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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향교, 서울에 남은 유일한 향교로 조선시대 양천현 중등교육기관

younghwan 2010. 11. 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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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천현은 동쪽으로 양화도, 서쪽과 남쪽으로는 부평부, 동남쪽으로는 금천현, 서북쪽으로는 김포현과 경계를 하고 있는 조선시대 현단위 행정단위이다.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강서구와 양천구가 옛 양천현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높은 산은 없고 김포공항 주변으로 넓은 평야가 들어서 있으며, 조선시대 소금창고였던 염창이 주변에 있다.

 양천향교는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향교로서 현재의 건물은 옛터에 1981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 조선시대 향교는 각 고을마다 수령이 설치.관리하였던 중등교육기관이었다. 수도인 한양의 동.서.남.중에 설치한 성균관의 부속기관인 사부학당이 있었고, 서울 주변 토지는 서울의 권문세가의 땅이었기때문에 향교에 대한 수요는 별로 많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고 법령에 정한바가 있기때문에 양천현에도 향교를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양천향교는 1980년대에 옛터에 건물을 복원한 향교로 전국에 산재한 향교 건물 중 가장 표준적인 건물을 참조해서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출입문인 외삼문은 솟을대문을 하지 않고 그냥 맞배지붕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양천향고 외삼문을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을 볼 수 있다. 명륜당은 앞면 5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중앙 3칸이 대청마루이고, 양쪽에 온돌방을 둔 것으로 보인다. 


양천향교 강당인 명륜당은 중앙 마루는 출입문은 큰 창호로 되어 있어 열었을 경우 시원한 느낌을 주기는 한다. 하지만, 향교에서 유생들이 공부하는 기간은 주로 겨울인 까닭에 북부지방에는 문을 조그맣게 해서 춥지 않게 하는 것이 보통인데, 원래의 모습은 아니고 복원할 때 보기에 좋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명륜당에는 툇마루를 두고 있다.


뒤쪽 대성전 입구에서 본 명륜당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


명륜당에서 본 양천향교 마당과 외삼문


공자를 비롯한 옛 선현들을 모신 사당인 대성전 출입문인 내삼문은 외삼문과는 달리 솟을대문을 하고 있다.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대성전.


대성전이 있는 마당에는 전사청 건물이 있다. 보통 동무.서무를 두어서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곳은 대성전만 있다.


양천향교 입구에 있는 비석들. 아마도 양천현을 거쳐간 수령들의 공덕비를 모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향교 입구임을 알려주는 홍살문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양천향교는 조선 태종 11년(1411)에 처음 지었으며, 최근인 1981년에 전면 복원하였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명륜당,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다.대성전의 안쪽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과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양천향교는 전국 234개 향교 중 서울에 있는 유일한 향교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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