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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도자공에실] 고려후기의 청자

younghwan 2011. 2. 1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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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후기에는 몽골의 침입으로 오랜 기간 전쟁을 치르면서 국가적으로 경제가 상당히 어려웠던 시기이다. 이는 청자제작에도 영향을 미쳐 전반적으로 전성기의 청자에 비해서 고려후기에는 그 제작수법의 단순해졌으며, 이전의 세련된 기술들이 많이 쇠퇴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고려 중기 청자기술의 발달이 남송과의 교역 등을 통해서 크게 발전할 수 있었는데 그 경제적 기반이 약해짐으로써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고려후기 해안지역에는 일본의 왜구가 서남해안 지방을 침입하여 고려청자를 만들던 가마들이 있었던 전남 강진과 전북부안의 장인들이 내륙으로 피난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도자기 생산의 새로운 거점이 생기고 조선시대 분청사기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용어리 장식 붓꽂이, 고려 12세기.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것 중의 하나로 붓을 보관하던 문방구이다. 다양한 형태의 장식기법이 적용되었다.

필기는 붓을 보관하기 위한 것으로 연적과 함께 필수적인 문방구이다. 용머리 장식과 투각, 음각, 양각, 철화 등 다양한 장식 기법이 어울려 조형적으로 아름답다.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걸작 가운데 하나이다. <출처:중앙박물관>


복숭아 모양 연적. 후대에 만들어진 많은 연적들에 비해서 조형미나 조각수법의 세련됨이 뛰어난 작품이다.


모란무늬 기와. 청자로 만든 기와이다. 청자기와를 얹은 건물은 우리나라에서는 잘 보기 힘들고 중국 북경 자금성은 대부분 유리기와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전기까지는 청자기와를 얹은 건물들이 있기는 했으나, 워낙 비용이 많이 들어서 국가적으로 금지를 시켰다고 한다.

<고려사>에는 '의종 11년 고려궁 후원에 연못을 팠다. 거기에 정자를 세우고 그 이름을 양이정이라 했는데, 청자 기와를 덮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증명하듯 1965년 국립바물관이 발굴한 전라남도 강진군 사당리 청자 가마터에서 청자 기와가 많이 나왔다. <출처:중앙박물관>


모란무늬 판. 현재로서는 그 용도는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장식용 건축자재가 아닌가 생각된다.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는 장식용 판으로 전체적인 무늬가 매우 화려하다. 사각판은 크게 둘로 나누어 무늬를 장식했다. 중앙에는 모란 꽃을 부각시켜 붉은 색의 구리 성분 안료를 부분적으로 칠했다. <출처:중앙박물관>


새 대나무 매화무늬 판, 고려 12~13세기


모란넝쿨무늬 완(찻그릇), 고려 12세기


꽃모양 합, 대리석무늬 잔, 대리석무늬 합


연꽃무늬 참외모양 병, 고려 12세기 후반~13세기. 전성기에 만들어진 참외모양병에 비해서 조형미나 제작수법이 약간 떨어지는 느낌을 주고있다.

바탕에 백토를 상감 기법으로 넣고 그 부분을 제외한 전면에 철 성분이 다량 함유된 유약을 발라 구워낸 병이다. 철 성분으로 인해 유색은 흑갈색을 띤다.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가마터에서 이와 같은 자기 조각이 출토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모란 갈대무늬 매병, 보물 345호, 고려 12세기. 백자에 청자 대토를 상감하여 넓은 면을 만들고 다시 그 면에 지토와 백토를 상감하는 기법을 사용한 것은 이 매병이 유일하다. 청자와 백자의 특징을 적절히 혼합하여 만든 독특한 예이다.

고려시대 만들어진 백자 매병으로 높이 29.2㎝, 몸 지름 18.7㎝이다. 각 있게 세워진 두툼한 아가리와 팽배한 어깨 선은 몸체를 지나 밑부분까지 사선으로 줄어들어, 중국 북송의 영향을 받은 듯 하다. 몸체는 참외 모양으로 6등분해서 세로로 골을 만들었으며, 각 면에는 마름모 모양의 선을 상감으로 처리하였다. 그 안에는 청자 태토로 메꾸고 붉은색 자토와 흰색 백토로 모란, 갈대, 버들이 늘어져 있는 그늘에서 물새가 거니는 모습, 연꽃 등을 상감 처리하였다. 아가리 가장자리와 굽 둘레는 연꽃 잎을 도드라지게 돌렸고, 다시 청자 태토로 상감하여 백자에 청자 태토를 적절히 이용한 특이한 문양 효과를 내었다. 고려 청자와 백자를 하나로 혼합하여 완성한 희귀한 도자기로,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중요한 작품이다. <출처:문화재청>



버드나무무늬 병, 고려 12세기, 국보 113호. 술병으로 사용된 이 도자기는 도교적인 느낌을 주고 있는 보기 드문 청자이다.

원통 모양의 청자 병은 매우 드물다. 비슷한 형태의 병이 일본의 오사카 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술에 관한 시가 상감되어 있어 술을 담았던 것으로 보인다. 양면에 각각 수양버들을 대담하게 그려 넣어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출처:중앙박물관>

12세기경에 만든 높이 31.6㎝의 철회청자병으로 긴 통모양의 병 앞뒤에 한 그루씩의 버드나무를 붉은 흙으로 그려 넣은 소박한 병이다. 전체적으로 선의 변화가 거의 없는 직선이고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어깨 부분을 적당하게 모깎기를 하고 아가리가 밖으로 벌어진 모양을 하고 있어 단조로움을 덜어주고 있다. 몸통의 양면에 있는 버드나무를 제외하고 특별한 장식이 없으며, 대담하게 단순화시킨 버드나무의 간결한 표현에서 운치있고 세련된 감각이 엿보인다. 유약은 굽는 과정에서 우연히 한쪽면의 버드나무 아랫부분과 다른 면의 버드나무 배경 부분이 담담한 푸른색을 띠게 되었는데 이것이 마치 연못과 같은 회화적 효과를 더해주고 있다. 고려 철회청자 중에는 긴 원통형의 몸체를 지닌 특이한 형태의 병들이 몇 점 전해지고 있는데, 이 병은 그 중의 한 예로 1931년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일본인 수집가로부터 사들인 것이다. 형태상의 적절한 비례와 어깨의 모깎기 형태, 몸체에 그린 자연스러운 선의 흐름, 독창적인 표현들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다. <출처:문화재청>


국화넝쿨무늬 합과 연꽃넝쿨무늬 합, 고려 12세기
국화무늬는 상감 청자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지만 이처럼 국화꽃을 큼직하게 상감한 예는 흔하지 않다. 중심 무늬는 국화넝쿨무늬가 시원스럽게 둘러졌고 백상감된 꽃 중심에는 흑상감으로 격자무늬를 두어 꽃술을 표현하였다.


국화넝쿨무늬 항아리(13세기)와 은테를 두른 국화넝쿨무늬 합(12세기)


국화무늬 조롱박 모양 작은 병


구름 학무늬 기름병(12세기)과 기름병, 고려 13세기

무늬의 표현이 매우 단순하지만 날개를 활짝펴고 창공을 나는 학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이다. 좁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여백을 많이 주어, 넓고 푸른 하늘을 나는 학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출처:중앙박물관>

고려 후기의 청자
13세기의 고려는 중국 원나라와 전쟁을 오래 치르면서 국가 경제가 어려워졌고, 이는 청자의 제작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릇의 모양은 우아한 곡선을 대신하여 단순해지고, 그릇의 두께가 두꺼워졌다. 또 아름다운 비취색 청자 유약은 녹갈색이나 황갈색을 띠게 되고, 섬세한 상감 무늬는 점점 생략되거나 표현이 조잡해졌다. 이 과정에서 상감 무늬를 새기지 않고 도장으로 찍는 인화 기법이 새롭게 등장했다. 고려청자는 14세기에 들어서 빠르게 쇠퇴하였다. 특히 14세기 후반에 왜구가 침입하여 바닷가와 가까운 강진과 부안 지방의 사기 장인들은 내륙으로 피난하엿다. 이 때문에 청자 가마가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조선시대 '분청사기'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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