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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유적_고인돌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지 (사적394호)

younghwan 2011. 6. 1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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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인들이 살았던 선사 주거유적지이다. 오대산 자락에서 발원해 동해로 흘러드는 대표적인 하천인 남대천 끝자락에 자리한 늪지대처럼 생긴 지형에 있는 선사유적지이다. 이 유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유적지 중의 하나로 기원전 6,000년경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산리 선사유적지는 낙산사에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4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현재는 당시의 집터와 복원한 움집, 유물전시관 등이 있다. 다른 선사유적지와 마찬가지로 볼거리가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주변 지형과 자연환경 등을 살펴보면서 신석기인들이 살았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데 의의가 있는 유적지라 할 수 있다.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지는 신석기인들이 살았던 주거유적지로서 어로생활을 했던 낚시도구, 돌칼 등의 유적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 중 하나인 덧무늬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주로 함경도와 연해주 등에서 살았던 신석기인들과 그 기원을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고성 문암리, 속초 조양동, 강릉 초당동과 함께 동해안을 대표하는 선사유적지이다. 남대천 연어잡이 등 어로활동을 주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지에 복원되어 있는 신석기인 주거유적인 움집이다. 오산리 유적지에서 발굴된 신석기인의 주거지는 남대천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넓은 습지에서 바다방향으로 나지막한 산과 만나는 지점에 있다. 이는 어로활동에 편리할 뿐 아니라 외부의 침입에 대비하기에도 좋은 위치라 할 수 있다.


오산리 선사유적지 주변에 형성된 넓은 습지. 이 곳은 쌍호라고 불리우며 신석기시대에는 농경생활을 하지 않았기때문에 농지로 변한 부분을 포함해서 상당히 넓은 석호였던 것으로 보인다. 습지에는 바다에서 회귀한 연어를 비롯하여 다양한 어종의 물고기와 철새들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되며 신석기인이 살기에는 풍족했던 지역으로 생각된다.


지금은 유적지 한쪽편에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이 있고, 나무로 만들어진 통로를 통해서 습지를 한번 살펴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신석기인의 움집(수혈주거)
신석기시대 움집의 평면형태는 둥글거나 혹은 네모서를 줄인 네모꼴이 대부분이다. 지름 또한 한 변의 길이가 5~6m 정도로 면적이 20~30 m² 정도였으며 대략 4~5명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움집의 바닥은 진흙을 깔아 다졌으며, 그 위에 마른 풀이나 짐승 가죽 등을 깔고 생활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집안 가운데의 화덕자리는 음식물의 조리뿐만 아니라 실내를 따뜻하게 하거나 밝게 하는데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석기 유적인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에서는 발굴조사를 통해 14기 집자리가 확인되었다. 대체로 직경 6m 가량의 원형에 가까운 평면 형태를 하고 있으며 모래로 된 바닥에는 5 cm 정도의 두꼐로 점토를 깐 다음 불을 놓아 단단하게 처리하였다. 내부 중앙에는 좁고 긴 돌을 여러 개 돌려 만든 네모난 화덕자리가 1~2개 설치되어 있다. 이 밖에도 5기의 야외노지가 확인되었는데, 대부분의 돌들은 오랫동안 불을 맞아서 깨어지거나 갈라진 채로 노출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일종의 공동취사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노지의 형태는 대부분 1.5~3.4m 의 원형이나 타원형으로, 20~30cm가량 바닥을 파고 그 위에 여러겹의 돌을 쌓아 만들었다. 움집터는 오산리 유적을 비롯하여 서울 암사동, 충북 쌍청리, 부산 동삼동, 황해도 봉산 지탑리 등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들 움집터는 한 유적에 몇개씩 모여 있는 것이 대부분이고, 그 중에는 서로 겹쳐 있는 예도 있어 한 마을에서 여러 시기에 걸쳐 새로운 집을 지으면서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출처:양양군청>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지에선는 약 14기의 집터가 발굴되었으며, 현재는 그 위치에 움집을 복원해 놓고 있다. 움집의 재료는 습지에서 자라고 있는 갈대로 만들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움집출입문


움집은 평면형태는 둥글거나 혹은 네모서를 줄인 네모꼴이다. 움집 중앙에는 난방과 취사를 위한 화덕이 설치되었으며, 한집에 약 4~5명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닥은 진흙을 깔아 다졌으며, 그 위에 마른 풀이나 짐승 가죽 등을 깔고 생활했다고 한다.



움집을 세우지 않고 화덕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는 곳도 있다.


옆쪽에서 본 신석기인의 움집


갈대들이 자라고 있는 습지. 습지에는 물고기를 비롯한 다양한 생물과 철새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습지내 물이 흐르는 통로


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오산리 유적지에서 출토된 항아리. 가장 오래된 신석기인의 토기 중 하나인 덧무늬토기는 주로 어로생활을 하던 동해안, 남해안 신석기인들이 사용하던 토기이다.


오산리 유적지에서 출토된 누른무늬토기.



 양양 지경리에서 출토된 토기



양양 오산리 선사박물관


오산유적지 부근에 있는 솔비치콘도.



양양 오산리 선사유적지 (사적394호)
이 유적은 기원전 6,000년 이전부터 신석기시대의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가 남아 있는 곳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유적 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목탄은 측정연대가 지금으로부터 8,0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므로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 초기 단계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1977년 처음 발견된 후 1987년까지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6차례의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집터의 모양은 신석기 시대의 다른 유적이 움집인 것과는 달리 바닥이 둥근 형태의 지상가옥으로 밝혀졌다. 출토 유물 중, 토기는 아가리 부분에만 덧 띠를 붙이거나 눌러찍기로 무늬를 낸 납작바닥의 토기가 대표적이며, 석기는 이음낚시도구, 돌칼 등 해양어로 생활에 쓰인 도구가 많이 출토되었다. <출처:양양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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