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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악기 우리음악', 조선시대 우리 음악의 성립과 발전

younghwan 2011. 7. 10.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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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가 도입된 이래로 우리나라 음악은 불교행사 중심의 음악이었으나, 유교가 국가 통치이념에 정착되기 시작한 고려시대부터는 유교의례에 중국의 음악이 도입되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 흔적은 많지 않아 보인다. 유교가 국가통치이념이 확립된 조선사회에서는 유교 통치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국가와 왕실을 중심으로 각종 의례에 맞은 음악을 연주함으로서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해진다는 예악사상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조선전기 세종은 한글창제와 함께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기술로 악기와 악보를 만들어 조선의 음악제도를 정립하였는데, 세종대왕 스스로가 음악에 대한 식견과 재질이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보이며, 난계 박연과 함께 예약사상에 맞게 음악체제를 정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성종대에는 조선최고의 실용음악 이론서인 악학궤법이 편찬되어 음악이 조선사회의 법제도의 일부가 되었다. 조선후기 들어서는 정조대에 기존의 음악체제들이 다시 한번 정비되었으며, 각종 악서와 의궤들이 이시대에 많이 편찬되었다고 한다.

우리 음악의 성립과 발전
조선시대 음악은 지금까지 불교 중심의 음악에서 벗어나 유교 통치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국가와 왕실 중심의 음악으로 크게 성행하였다. 국가의 각종 의례에서 격에 맞는 음악을 연주함으로서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해진다는 예악사상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조선전기는 자주적 문화를 꽃피우기 위해 노력하였던 시기이다. 세종은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기술로 악기와 악보를 만들어 조선의 음악 제도를 정립하였다. 조선후기는 정치적 안정화를 추구하고 음악을 복구하는 등 찬란했던 문화를 중흥시키고자 하는 시기이다. 정조는 장악원을 정비하고 악서 간행, 악보 발간 등 우리 음악 체계를 완성하여 문화의 황금기를 이루었다. <출처: 중앙박물관>

세종과 정조
세종은 조선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세종은 종묘제례악의 근간이 되는 <정대업>과 <보태평> 등 새로운 음악들을 창제하였다. 음악의 길이를 표기할 수 있는 '정간보'를 창안하였고 표준 음높이를 제정하고, 편종.편경을 제작하는 등 우리 음악의 근간을 확립하였다. 정조는 역대 왕에 비해 많은 악서와 의궤를 편찬하여, 궁중음악의 의례와 격조를 높였다. 혜경궁 홍씨 회갑연에 참석하기 위한 왕의 행렬을 그린 화성행차도는 왕실의 위엄과 권위와 더불어 당대 최고의 음악 예술을 엿볼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을축년에 만들어진 청황종 편종, 편종은 한 줄에 여덟 개씩 모두 열여섯 개의 종을 각되로 두드려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이 종에는 음높이를 나타내는 청황과 만든 연도의 간지인 을축이라는 명문이 있다.


특경, 특경은 'ㄱ'자 모양의 돌조각인경 한 개를 틀에 매달아 놓은 것으로 황종음을 낸다. 이 경에는 청미라는 간지가 있다. 조선시대 국악에서 돌로 만든 경은 음의 기준이 되는 것으로 상당히 중요시 했던 것으로 보인다.


계축년에 만들어진 황종 편경, 경에 음높이를 나타내는 호아과 계축이라는 간지가 새겨져 있다.


세종실록에 실린 정간보. 세종 대에 새로 만들어진 곡들은 각 음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아 새로운 기보 방법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우물 정자 사이에 음을 기록한 악보, 즉 '정간보'를 만들었다. 동양 최초의 음길이와 높이를 나타낸 악보이다.


난계 박연의 시문집인 난계유고. 난계 박연의 글을 모아서 엮은 시문집을 후손인 박심학이 1903년에 재간행한 것이다. 29편 상소문 가운데 음악에 관한 것이 대부분으로 악률, 악기의 제작, 음악제도 뿐만 아니라 연주 복식에 관한 사항 등 폭넓은 박연의 음악관을 볼 수 있다.


박연 부부의 초상. 세종 때 음악제도의 정비와 악학 연구에 공헌한 박연의 초상으로 부인이 함께 그려져 있다.


바라


나각은 조선후기 행진용으로 사용된 악기이며 나발과 짝을 이루어 교대로 한 음을 길게 소리낸다. 소라껍데기 꽁무니를 갈아서 구멍을 내어 입김을 불어 소리를 낸다.


태평소는 국악기 중 제일 큰 소리를 내는 관악기로 고려말 원나라에서 들여왔다고 한다. 종묘제례악, 풍물, 굿 등 다양하게 사용된다 대취타에서는 유일한 선율악기로 우렁찬 음색을 지녀 분위기를 돋우는 역할을 한다.


나발, 긴 나팔인 나발은 조선후기에 놋쇠로 만든 악기로 군대에서 신호를 주고 받을 때 사용했다. 나각과 짝을 이루어 교대로 한 음을 길게 소리낸다.


악학궤범, 조선최고의 실용음악 이론서이서 법률서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성종 24년(1493)에 장악원의 낡은 의궤와 악보를 바로 잡으라는 어명에 따라 편찬했다. 이 악서는 음악이론을 비롯하여 아악.당악.향악에 관한 여러 사항을 그림으로 풀어 설명하고, 이외에도 악기.의상.그림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대악후보, 보물 1291호, 1759년, 조선 세조 당시 음악을 담은 악보이다. 영조 35년 서명응이 세조 때의 음악을 모아 편집한 악보이다. 책 표지 제목에 '장악원'이란 인장이 찍혀 있어 장악원에서 연주한 악보임을 알 수 있다.


양금신보, 장악원 악사였던 양덕수가 광해군 2년(1610) 편찬한 거문고 악보이다. 비파와 거문고의 명인이었던 양덕수가 임진왜란 때 고향인 남원으로 피난하여 그의 벗이었던 임실 현감 김두남의 도움을 받아 펴낸 것이다.

 * 자료참조: 중악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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