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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삼척 죽서루 (보물 213호), 관동팔경 중 최고의 누각으로 일컫어 지는 곳

younghwan 2011. 11. 2.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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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동팔경은 강원도 동해안 여덟곳 명소로 금강산 유람과 연계하여 조선시대 선비들이 한번은 가고 싶어 했던 곳으로 많은 그림과 시로서 관동팔경의 아름다움이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관동팔경은 금강산 너머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 간성의 청간정, 양양 낙산사, 강릉 경포대, 삼척 죽서루, 울진 망양정, 평해 월송정을 일컫는다. 이 곳들은 대부분 해안, 석호, 하천의 경치좋은 곳에 세워진 누정과 함께 하고 있다. 실제로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주변에 충분히 넓은 농지가 있어서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는 부호들의 저택이나 관아가 가까웠던 곳으로 여행의 편의성도 고려했다고 할 수 있다.

 삼척 죽서루는 관동팔경 중에서도 첫번째로 꼽히는 누정으로 태백산 부근 백병산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나가는 오십천이 내려다 보이는 절벽에 자리잡고 있다. 죽서루의 존재는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며 현재의 건물은 1403년에 삼척부사 김효손이 중창하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죽서루는 강릉과 함께 관동지방의 큰 고을이었던 삼척도호부 관아에서 운영했던 누정으로 삼척을 찾는 귀빈들을 접대하던 공식적인 연회장소이다. 이 건물은 원래 5칸의 맞배지붕 건물이었던 것으로 양쪽에 1칸씩을 증축하여 현재는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이 곳에는 숙종, 정조, 율곡 선생 등 많은 명사들이 남겨 놓은 시들이 내부에 걸려 있다.



태백산 부근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드는 오십천가에 세워진 삼척 죽서루. 절벽 위 자연 암반위에 누정을 세워놓고 있는 누정으로 '관동제일루'라 일컫어 진다.


죽서루 앞을 흐르는 오십천. 삼척 오십천은 백두대간 백병산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드는 총 길이 60 km의 하천으로 형산강 이북의 경북과 강원도 동해안에서 제일 긴 하천으로 알려져 있다.


죽서루 누각으로 올라가는 길


옆쪽에서 본 죽서루. 자연 암석 위에 세워진 2층 누각이지만 자연지옇을 그대로 잘 활용하고 있다.


죽서루 건물은 고려시대부터 존재했지만 현재의 건물은 세종대에 크게 중창하였으며, 후대에 많은 보수가 있었다고 한다. 앞쪽에 171년 부사 이성조가 쓴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죽서루내부에는 많은 명사들이 남겨 놓은 시들이 걸려 있다.


죽서루는 원래 5칸 맞배지붕 건물이었는데, 7칸으로 증축하면서 팔작지붕으로 바뀌었다. 내부에는 원래 맞배지붕 옆으로 나와 있던 도리의 뻘목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죽서루 천정은 서까래가 노출되어 있는 연등천정을 사용하고 있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형태도 맞배지붕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조선 숙종때 유학자로 남인세력의 거목이었던 허목이 송시열과의 예송논쟁으로 삼척부사로 좌천되었던 시절에 '제일계정'이로고 써 놓았던 현판이 걸려있다.


1837년 부사 이규헌이 쓴 '해선유회지소' 현판


죽서루에 걸려 있는 조선시대 명사들이 남겨 놓은 글.

삼척 죽서루 (보물 213호), 삼척시 성내동
이 누각이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고려 명종 떄의 문인 김극기가 쓴 죽서루 시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12세기 후반에는 이미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1403년(태종 3) 당시 삼척부사 김효손이 고쳐지었다. 절벽 위 자연 암반을 기초로, 나머지 여덟개의 기둥은 돌로 만든 기초 위에 세웠으므로 13개의 기둥 길이가 각각 다르다. 상층은 20개의 기둥으로 7칸을 형성하고 있다. 자연주의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진수로 관동제일루라 할 수 있다. 현재는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로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지만 원래는 5칸이었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원래 건물인 가운데의 5칸 내부는 기둥이 없는 통칸이고, 후에 증축된 것으로 보이는 양측 칸의 기둥 배열은 원래의 양식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 다르게 배치되어 있다. 마루는 우물마루이며 천정은 연등 천정인데, 좌측 뒷간 일부는 우물천장으로 하였다. 누각에 걸린 글씨 중 '제일계정'은 1662년(현종 3) 부사 허목이 쓴 것이고, '관동제일루'는 1711년(숙종 37) 부사 이성조가 썼으며, '해선유회지소'는 1837년(현종 3) 부사 이규헌이 쓴 것이다. 이밖에 숙종, 정조, 율곡 이이 선생 등 많은 명사들의 시가 걸려 있다. <출처:삼척시청>


죽서루는 오십천변 바위절벽 위에 세워져 있으며, 주변을 산책하면서 오십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죽서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삼척 오십천


오십천과 주변 바위절벽


죽서루 남쪽 바위 언덕


죽서루 남쪽에 있는 용문바위. 이 바위는 신라 문무왕이 용이 되어 동해바다를 지키다가 오십천을 뛰어들었을 때 뚫고 지나갔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용문바위
신라 30대 문무왕이 사후 호국용이 되어 동해바다를 지키다가 어느날 삼척의 오십천으로 뛰어들어 죽서루 벼랑을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호국용이 오십천으로 뛰어들 때 죽서루 옆 바위를 뚫고 지나갔는데 그것이 용문바위이다. 그 후 용문바위는 아름다움과 장수, 다복의 기원처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용문을 드나들며 소원을 빌었다. <출처:삼척시청>


용문바위 위쪽에는 선사시대인들이 바위위에 새겨 놓은 성혈 암각이 모두 10개 정도 남아 있다.

죽서루 선사 암각화
암각화는 바위나 절벽 또는 동굴 내의 벽면에 물상, 기호, 성혈 등을 그리거나 새겨 놓은 것을 말하는데, 죽서루 선사 암각화는 바위 위에 여성 생식기 모양의 구명을 뚫어 놓은 성혈 암각이다. 성혈은 선사시대에 풍요, 생산, 다산을 상징하는 것으로 한국적인 원시신앙의 형태로 발전하여 조선시대에는 칠월칠석날 자정에 부녀자들이 성혈터를 찾아가서 일곱구멍에 좁쌀을 담아 놓고 치성을 드린다음 그 좁쌀을 한지에 싸서 치마폭에 감추어 가면 아들을 낳는다는 민간신앙이 성행했다. 성혈의 제작은 암반을 쪼아 깊이 판 다음 원형의 돌 또는 나무로 연마, 구멍을 넓혀서 만든다. 죽서루 경내의 성혈은 죽서루 동쪽 용문바위 위에 직경 3~4cm, 깊이 2~3cm 크기이며 모두 10개이다. <출처:삼척시청>


삼척 죽서루 출입문


죽서루 마당에 심어져 있는 오래된 고목


삼척 죽서루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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