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릉은 고려 21대 희종의 능으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산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이 능은 조선시대 이후 방치되어 있다가 조선 현종 때 강화유수 조복양이 찾아내어 다시 봉분하였다고 한다. 희종은 신종의 아들로 무신정권 최충헌 집권기에 신종의 양위를 받아 1204년에 즉위하였고, 1208년 당시 내시 왕준명 등과 함께 정권을 휘두르던 최충헌을 죽이려다 실패하여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이후 개성으로 돌아와 살기는 했는데, 복위 음모가 있다는 무고로 다시 교동도로 유배되어 죽었다고 한다.
석릉은 무신정권에 의해 폐위된 국왕의 능이라서 그런지 넓은 벌판이 내려다 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에 조성되지 못하고 강화도에서도 깊은 산중에 속하는 양도면 진강산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다. 석릉을 찾아가는 길은 양도면 카톨릭대학 인근 길정리마을에서 산길을 약 1 km정도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능은 고려시대 능제에 따라 작은 봉분과 주위에 'ㄷ'자형의 석축이 있으며, 앞쪽에는 3단으로 쌓은 석단이 있다. 무신정권에 맞서다 오랜 유배생활을 해서 그런지 능의 규모도 작고 초라해 보인다.
강화 양도면 진강산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 고려 21대 희종의 석릉. 이 능이 조성될 당시부터 초라하게 조성되었던 것 같으며, 조선시대에는 방치되었던 것을 조선 현종때 강화유수 조복양이 다시 봉분을 조성했다고 한다.
석릉은 마을에서 약 1km 정도 떨어진 산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어서 오랜기간 방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에서 이런 산길을 따라서 한참을 걸어들어가야 한다.
석릉 입구.
석릉은 작은 둘레석이 없는 작은 봉분과 그 주위에 'ㄷ'자형으로 쌓은 담장으로 되어 있다. 조선후기 현종때 새로 봉분을 만들때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석물이 있기는 하지만 제자리는 아닌 것 같다.
석릉 앞에 놓여진 초라한 문인석
석릉 앞에는 '고려희종석릉'이라고 적혀 있는 표석이 놓여 있는데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석릉을 둘러싸고 있는 'ㄷ'자 모양의 담장
석릉 앞에는 문인석을 비롯한 석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있다. 왕릉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시대 왕릉 조성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인 3단으로 쌓은 석단. 이 곳을 정비하면서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 21대 희종의 능인 석릉.
강화 석릉 (사적 369호),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고려 21대 왕인 희종(재위 1204~1211)의 무덤이다. 희종은 최충헌의 횡포가 심해지자 그를 제거하려다 실패하고 재위 7년(1211)에 폐위되어 교동도로 유배되었다. 고종 24년(1237) 8월 용유도에서 세상을 떠나 이곳에 안장되었다. 능은 지름 8m의 원형 봉분과 주위에 'ㄷ'자형의 석축으로 낮게 둘러싸여 있으며, 묘비 1개와 문인석 2구가 있다. 2002년에 발굴조사를 통해 청자상감국화문잔탁 등 12~13세기 상감청자 전성기에 만들어진 유물이 출토되었다. <출처:강화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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