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한자가 수용된 이후 우리말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두, 향가, 향찰, 속자, 구결 등 다양한 형태로 방법들이 만들어졌는데, 보통 이를 통털어서 이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서 우리말을 적던 표기법으로 삼국시대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고려때에는 이서라는 형태로 하급관리들이 공문서나 관용문에 많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보통 이두는 넓은 의미로 한자를 차용해서 음을 표기한 것을 통칭하며, 현재의 일본어 또한 이두와 비슷한 개념의 문자라 할 수 있다.
이두는 신라초기부터 사용되어 진 것으로 보이며 서동요, 제망매가 등 다양한 문학작품이 이두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통일신라 신문왕때 설총이 기존의 이두사용법을 정리하여 크게 발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두의 사용은 삼국유사에서 전해오는 향가를 비롯한 문학작품, 안압지를 비롯한 유적지에서 출토된 목간을 비롯한 여러 유물들, 남산신성비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이두로 표기한 문학작품으로는 삼국유사에 신라향가 14수, 균여전에 고려향가 11수가 전해진다.
우리말, 우리글로 - 이두, 향찰의 발명
우리나라에 한자가 수용되기 시작하면서, 이를 우리말로 표현하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이두나 향가, 향찰, 속자, 구결 등이 만들어졌다. 이두는 한자의 소리와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은 것이다. 논을 뜻하는 답(畓)과 같은자, 논밭의 면적을 뜻하는 형(形), 자물쇠를 의미하는 일(鎰)과 같은 속자 즉 우리식 한자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또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제망매가 같은 우리 노래를 짓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유교 경전에 조예가 깊었던 설총은 이두를 정리하는 데 공헌하였다. 또한 한문을 읽기 위해 새로운 표기로서 한문에 점을 찍거나 부호를 작게 써 넣은 메모와 같은 훈점이 고안되었다. 특히 뼈침으로 눌러 표시한 것을 각필이라고 한다. 늦어도 8세기 우리나라에는 이런 글자를 쓰거나 점을 찍는 구결이 있었는데 이는 이웃 일본에도 전해졌다. <출처:중앙박물관>
1. '대오지랑'이라 쓴 목간(복제품), 경주 월성해자에 발견된 이두가 적혀있는 목간이다.
2. 일본식 한문으로 된 문서 목간(복제품), 7~9세기, 일본, 일본문자가 이두와 비슷한 방법으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3. '백전' 등을 기록한 나주 복암리 목간
4. 미륵사지 목간
1. '동궁아일' 새김 자물 경주 안압지, 자물쇠에 적혀있는 鎰(일)은 자물쇠를 뜻하는 우리식 한자라고 한다.
2. 이두목간, 통일신라, 경주 안압지
훈점을 사용한 금광명경, 보물 734-1호, 고려. 훈점은 한문을 읽을때 독해를 쉽게 하기 위해 표시해 두는 것으로 오늘날의 문장부호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다.
1. 논어를 쓴 목간, 통일신라, 김해 봉황동. 논어를 비롯한 유교경전이 다양하게 읽혀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2. 논어를 쓴 목간, 통일신라, 인천 계양산성
3. 좋은 문장을 모은 '문선'을 연습한 목간(복제품), 7~9세기, 일본
임신서기석, 보물 1411호, 612년. 비교적 이른 시기인 7세기경에 당시 젊은 학생들이 다양한 고전을 읽으면서 공부를 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임신년에 젊은이가 맹서를 기록한 돌
임신년 6월 16일 두사람이 함께 맹서하여 쓴다. 하늘 앞에 맹서하여, 지금으로부터 3년 이후에 충성스런 도를 행하고 과실이 없기를 맹서한다. 만약 이일을 하지 못하면 하늘로부터 큰 죄를 얻을 것을 맹서한다. 또 먼저 신미년 7월 22일에 크게 맹서하기를, 3년에 시, 상서, 예기, 춘추전을 차례로 습득하기로 맹서하였었다. <출처:중앙박물관>
삼국사기, 옥산서원, 보물 535호.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 23년(1145)에 김부식이 주도하여 편찬한 삼국시대 역사책으로 사대주의적이라 평가절하를 받기도 하지만, 삼국의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현재 남아 있는 삼국사기는 조선시대때 만들어진 것으로 옥산서원과 개인이 소장한 2점등이 있다.
삼국유사, 삼국유사에 신라향가 14수가 전해지는 고려시대 일연이 저술한 역사책이다.
일본의 가장 오래된 역사책, 고사기, 에도시대. 고사기는 712년에 완성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와 전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역사서인 일본서기와는 다른 성격으로 삼국유사와 비슷한 성격을 갖는 역사책이라 할 수 있다.
백제의 와니 길사(왕인 박사)가 논어와 천자문을 왜에 전해주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전승과 엣 말을 수집하여 만들었다고 전하지만, 실제 문장을 보면 뒤에 한자의 뜻에 따라 표기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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