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은 한강 남쪽에 위치한 청량산을 중심으로 동쪽의 남한산, 남쪽의 검단산 사이에 형성된 분지를 둘레 8km의 석축으로 쌓은 대표적인 조선시대 산성이다. 남한산성은 동쪽은 높고 경사진 지형이며, 동쪽은 완만하게 계곡이 형성되어 있는 천혜의 요새로서 지형적인 장점을 갖고 있는 곳으로 주위의 산으로 둘러싸여 산성내 물은 풍부한 편이었다.
산성내에는 비상시에 대비하여 3개의 큰 연못이 파고 물을 저장해 두고 있다. 원래의 연못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매몰되거나 훼손되어 현재는 2의 연못이 남아 있다. 연못에는 1672년에 부윤 이세화가 세운 정자인 지수당이 복원되어 있으며 1804년 유수 김재찬이 지은 관어정은 그 터만 남아 있다. 남한산성 내에는 조선시대 차관급에 해당하는 군사조직인 수어사를 겸했던 정2품의 광주유수가 근무했던 행궁과 관아가 있었고, 연못의 정자는 관아에서 연회를 베풀던 곳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남한산성내 연못과 정자는 조경과 연회를 위한 공간이기도 했지만, 군사적인 목적의 저수지 기능이 중요시 되었던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한산성내 물을 저장했던 3개의 연못 중 가운데 연못에 세워진 작은 정자인 지수당. 이 정자는 1672년에 처음 세워졌다가 1925년 홍수로 매몰된 것을 최근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지수당은 앞면 3칸, 옆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정자이다. 광주부 유수가 차관급에 해당하는 종2품의 높은 관직에 있었지만, 군사방어상 중요했던 남한산성의 입지를 말해주듯이 그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지수당 내부와 현판
지수당
지수당은 현종 13년(1672)에 부윤 이세화가 건립한 정자로 건립 당시에는 정자를 중심으로 앞뒤에 3개의 연못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2개만 남아 있다. 정자의 동쪽에는 부윤 이세화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고 제3연못지로 추정되는 지역은 현재 논으로 바뀌어 있다. 정자의 남쪽에는 서에서 동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정자 옆의 연못은 'ㄷ'자형으로 파서 연못이 정자를 둘러싼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으나 을축년 대홍수(1925) 때 매몰된 것을 근래에 고증을 통하여 복원한 것이다. <출처:광주시청>
앞 연못. 풍류를 즐기는 정원의 성격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산성내 물을 저장하는 공간이라는 기능적 측면이 강한 연못이라서 장식성을 배제하고 있다.
지수당과 연못
지수당 동쪽에도 비슷한 규모의 연못이 있었다고 하나, 1925년 대홍수 때 매몰된 것으로 보인다.
남한산성에서 물을 저장하는 공간으로서 주 역할을 했던 곳은 동쪽편 연못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지수당이 있는 서쪽편 연못에 비해서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동쪽편 연못은 산성내 물을 저장하는 중요한 연못으로 그 규모가 큰 편이다. 연못한 가운데에는 작은 섬을 만들어 놓고 있다. 방형(사각형)연못에 원형의 작은 섬을 두고 있는 도교사상이 반영된 연못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연못 동쪽편에는 1804년 유수 김재찬이 지은 관어정이 있었다. 3개의 연못 중에서 서편 소도에 있는 정자로 지수당과 마주하고 있으며 소선을 두어 왕래하였다. 제갈량이 못에 임하여 방책을 경정하며, 적을 헤아렸다는 데서 그 이름(관어정)을 취하였다고 한다.
관어정 옛 터에서 본 연못과 섬.
연못 동쪽으로는 개천이 있었다고 하며, 산성 동쪽편 좌익문을 통해 광주지역으로 흘러내려 간다.
연못 동쪽편에 위치한 남한산성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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