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에 일대에 있었던 통일신라시대 고분들 중 일부를 경기도박물관 마당에 옮겨 놓은 것이다. 아마도 산본에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발굴조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9기의 고분이 발굴조사되었는데 그 중 1,2,3호분만 이전 복원되어 있다. 봉분의 크기는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 귀족의 무덤에 비해서 그 크기가 작은 편이지만 일반적인 무덤에 비해서는 큰 편이다. 고분내 발굴된 유물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고 경기도박물관 내에 전시된 유물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중요한 유물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산본은 고대 이래로 한반도 연안항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대부도 안쪽의 안산과 가까운 곳으로 세력이 크지는 않지만 통일신라의 지방 귀족층이 살았던 지역으로 보인다.
경기도박물관 야외에 이전되어 있는 통일신라시대 고분. 90년대에 군포 산본동에 신도시가 조성되면서 이전.복원된 것으로 보인다.
이 곳으로 이전.복원된 3기의 고분 중 1호분은 봉문에 둘레돌을 둘렀으며, 직사각형 형태의 구덩식 돌덧널무덤을 하고 있다.
시신을 안치했던 직사각형 형태의 돌덧널
2호분도 둘레에 돌을 둘렀으며, 정사각형태의 돌방을 두고 있는 굴식돌방무덤이다.
1호분에 비해서 돌방의 규모는 큰편이다.
3호분도 비슷한 형태라고 하며 봉분의 크기는 작은 편이다.
군포 산본동 고분군
통일신라시대의 고분으로 1990년도에 모두 9기를 발굴조사하였는데 그 중 1,2,3호분만 이전 복원한 것이다. 1호분은 긴 메모꼴의 토광을 파고 그 안을 막돌로 쌓은 구덩식 돌덧널무덤으로 크기는 240x95x96cm 이다. 2호분은 네모꼴의 토광안에 돌방과 널길을 만든 굴식돌방무덤으로 돌방의 크기는 약 465x270x95cm이다. 1,2호 모두 무덤 주변에 둘레돌을 둘렀으며 내부에는 주검받침을 마련하였다. 3호분은 긴 네모꼴의 구덩식 돌덧널무덤으로 크기는 약 220x87x80cm이다. 발굴 당시에는 봉분이 유실되어 크기를 알 수 없었으므로 1,2호분의 둘레돌을 기준으로 봉분의 둘레를 추정하여 복원하였다. 1호분과 2호분은 무덤의 구조를 비교할 수 있도록 노출하여 복원하였다. <출처:경기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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