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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 문헌자료, 종교와 사상을 기록한 문헌

younghwan 2012. 1. 13.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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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지역을 대표하는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경기도박물관에는 유형적인 유물이 많았던 삼국시대 유물은 많지 않지만, 서울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권문세가들이 많이 살았던 지역이어서 그런지 문헌자료를 많이 전시하고 있는 편이다. 조선시대 통치이념이었던 유교 경전이었던 논어, 맹자, 춘추를 비롯하여 보물 1053호로 지정된 성종의 명복을 빌기위해 인수대비가 펴낸 한글로 불교행사와 의식에 대한 내용을 풀어쓴 진원권공을 비롯하여 여러 한글 문헌들도 볼 수 있다. 이곳에 전시된 문헌자료는 꽤 많은 편으로 경주박물관이 신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이라면, 경기도박물관은 나름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과거를 연구하고 이해하는데 쓰이는 자료는 여러가지가 있다. 과거의 사실을 알려주는 역사적 흔적을 사료라고 한다. 흔히 '사료가 없으면 역사도 없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은 역사연구의 기본자료이다. 그 중 문자의 기록물인 문헌사료 또는 문헌자료는 사료의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을 이루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같은 역사책이나 천문도, 의학서, 편지, 일기, 지도, 시, 소설, 고문서 등 그 종류와 내용은 매우 다양하다. '문헌'은 원래 학식있는 현인의 가르침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책을 의미하는 서적, 도서라는 뜻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기록의 매체가 현대처럼 다양하지 못했던 예전에는 문자를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따라서 이것의 도움없이 과거를 알거나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소리나 영상을 포함하여 기록의 대상과 매체가 다야향해질 미래에도 문자의 기록은 과거를 이해하는 훌륭한 자료가 될것이다. 현재 우리에게는 과거를 미래의 후손에게는 현재의 우리를 알려주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바로 문헌자료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입조일기, 18세기, 조중희, 함안조씨 참판공파 분파종가에서 기증한 문헌으로 조선후기 저자가 관작생활 동안 일어난 일을 객관적으로 기술한 일기이다.

조선후기의 문신 조중희(1711~1782)가 과거에 합격한 1736년부터 벼슬에서 물러나는 1780년까지 45년 동안의 관직생활을 쓴 일기이다. 개인의 일기지만 관직생활에서 겪은 일을 상당히 객관적으로 썼기때문에 당시의 정치.사회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다. 입조일기는 현재 1권만 남아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아들이 그대로 옮겨 정리한 '선고입조일기'가 1,2권 모두 전한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선고입조일기, 18세기, 함안조씨 참판공파 분파종가, 조중희의 '입조일기'를 그의 아들이 그대로 옮겨 정리한 책이다. 틀린 글자만 고치고 내용은 그대로 옮겨 적어 현재 남아 있지 않은 입조일기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자치통감, 15세기. 한나라때 사마천이 쓴 '사기'와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역사책이다. 오늘날 역사를 기술하는 방법인 연대순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 역사를 말할때 상당부분은 이책을 참조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북송의 사마광(1019~1086)이 펴낸 '자치통감'을 1436년 세종의 명을 받아 윤회.권제 등이 교정하고, 주석을 정리하여 펴낸 책, 사마광의 '자치통감'은 중국 역사을 연대순으로 정리한 책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한글편지, 조선후기 보편하된 한글 사용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글편지이다.

종교와 사상.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것이 종교와 사상이다. 그만큼 오래 전부터 형성되어 왔고, 지금도 우리 생활과 많이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여기에는 당시의 가치관과 생활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기억을 통해 오랫동안 내려오던 가르침은 점차 '경전'이라는 것으로 세련되게 정리되었다. 우리의 신앙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이 토착신앙이다. 이는 우리민족의 삶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이어져왔다. 그 바탕 위에 중국을 통해 들어온 불교.유교.도교 등이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변하고 발전하면서 전통사상의 근본을 이루게 되었다. 불교는 4세기 후반 경에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불교는 종교적인 기능과 함께 삼국에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전달하는 역할과 고대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사상적인 뒷받침을 하였기 때문에 고구려, 백제, 신라 왕실에서도 적극 권장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더욱 발달하게 된다. 특히 거란과 몽골의 침입에 따른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대장경의 간행을 국가에서 이끌기도 하였다. 공자의 사상을 기초로 하는 유교 역시 국가체제의 정비를 위해 삼국시대부터 발달하였다. 교육기관에서는 그 경전을 가르쳤고, 삼국의 유교는 일본에 전해지기도 하였다.고려시대에는 이를 정치이념으로 삼아 관료를 교육시켰고, 과거를 통해 그 수준을 시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이전의 유교를 새롭게 정리한 성리학을 새로운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신선사상을 바탕으로 한느 도교는 7세기 경 중국을 통해 고구려에 전해졌다. 삼국 중 고구려에서 비교적 활발하게 유행하였고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더욱 널리 성행하였다. 개성의 궁궐을 비롯하여 많은 곳에 도교 사원을 짓고, 산천에 제사하고 별에게 제사하는 초제도 많이 지냈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도교적 행사를 관리하기 위한 소격서라는 부서를 두기도 하였다. <출처:경기도박물관>


논어, 맹자, 춘추. 사서삼경을 대표하는 고전이라 할 수 있다.


당사주책, 조선후기, 당사주란 사주를 토대로 하늘에 있는 12별의 운행에 맞춰 사람의 일생 운세를 점치는 방법을 말한다. 당나라 때 이허중이 만들어 당사주라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이허중의 원문 위에 알기 쉽게 그림을 넣어 많이 썼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오행길흉법, 19세기. 이 책은 사람의 이름을 오행에 맞게 붙여서 일생 운세가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자료이다. 책에 붙어 있는 주머니에는 점을 칠때 쓰는 작은 나뭇가지가 들어 있다. <출처:경기도박물관>


진언권공, 1496년, 보물 1053호. 조선 9대왕이었던 성종(재위 1469~1496)이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인 인수대비와 성종의 계비 정현대비가 왕의 명복을 빌며 펴낸 책이다. 불교행사와 의식에 대한 내용을 한글로 풀어 쓴 책으로 한글의 표기가 당시 실제적인 소리로 기록되어 있어 국어 연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인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은 동굴과 바위 등 여러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문자가 만들어진 후에도 종이뿐 아니라 석기, 토기, 청동기, 도자기, 목간, 기와, 비석, 장신구, 사리함, 직물, 불상, 건물 등에 자신들만의 그림과 기호 그리고 문자를 남겼다. 이 흔적은 때로는 우리에게 웃음과 감탄을 주기도 하지만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을 담고 있기도 하다. <출처:경기도박물관>


글자가 새겨진 청동합, 고려


붓주머니, 조선. 붓을 넣어 가지고 다니는 휴대용 주머니이며 자수로 글자를 새겨 넣었다. '월선간령복'이란 글귀와 예서로 된 명문이 보인다.


'태평흥국7년' 명 기와, 고려, 982년, 안성 봉업사지에서 출토된 암키와이다. 기와에 새겨진 글의 내용은 '태평흥국 7년 임오 2월 죽주에서 수(인), 수(오) 등이 모두의 힘을 합하여 불사를 하였다.'이다. 안성 봉업사지와 관련하여 연대를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백자청화대접형묘지(19세기말). 묘지는 무덤 앞에 묻은 죽은 사람의 이름, 신분 등을 써 놓은 기록 또는 기록판을 말한다. 고려시대까지는 주로 돌로 만들었으나 조선시대에는 도자기를 쓰기도 하였다. 이것은 백자 위에 청화 안료로 글자를 써서 구워 만들었다. 백화청호묘지(1853). 1853년에 만들어진 휜주목사 이민해의 묘지이다. <출처:경기도박물관>


글자가 새겨진 토기,


불상목판,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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