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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경주 원원사지삼층석탑 (보물 1429호), 통일신라 밀교를 대표하는 원원사 절터에 남아 있는 두개의 탑

younghwan 2012. 6. 5.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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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에서 동남쪽을 20여 km 떨어진 외동읍 모화리 동쪽 산에 위치한 통일신라 밀교의 중심지였던 원원사 절터에 남아 있는 보물 1429호로 지정된 원원사지 삼층석탑이다. 이 석탑은 통일신라 전성기의 정형화되어가던 삼층석탑의 구조를 하고 있으며, 절터 가운데 두개의 탑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두개의 탑은 같은 양식으로 만들어졌으며, 2단으로 기단부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놓고 있다. 부분적으로 파손된 곳이 많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석탑의 기단부에는 연화좌에 앉아 있는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으며, 탑신 1층 몸돌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무덤 등에는 각 방위를 지키는 신장으로 십이지신상을 새겨 넣는 경우는 많지만 석탑 기단부에 십이지신상을 새긴것은 이 석탑 이전에 유례가 없는 것이라고 한다. 이 탑들은 금당 앞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31년 가을에 경주고적보존회가 복원한 것이다.

 원원사는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 밀교이 중심이 되었던 사찰로 조선후기까지 그 명맥이 이어져 왔다고 한다. 원원사는 밀교의 후계자들인 안혜.낭융 들과 김유신.김의원.김술종 들이 뜻으로 모아 국가의 평화를 기원하며 세웠다고 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절터의 석탑은 그 양식으로 보아 8세기 중엽 통일신라 전성기때 세워졌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밀교는 비밀불교을 뜻하는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7세기 대승불교 화엄사상 등의 영향을 받아서 성립된 것으로 힌두교의 탄트라 신앙과 결합되어 후기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경향으로 일본은 천태종을 중심으로 밀교가 크게 번성하였으며, 중앙아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티벳불교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불교에서 사용하는 금강저가 밀교에서 사용하는 대표적인 불교 의식구이다.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초까지 밀교의 중심지였던 원원사 절터에 남아 있는 두개의 탑인 원원사지 삼층석탑이다. 원원사 절터에는 두개의 탑과 석등, 건물초석 일부가 남아 있다.


경주 원원사지 삼층석탑


원원사지 삼층석탑 중 동탑. 서탑에 비해서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석탑은 2층의 기단부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놓고 있는데, 석탑의 구성과 비례가 통일신라 전성기의 석탑답게 뛰어나며, 기단부와 몸돌에 새겨진 부조상의 솜씨 또한 뛰어나다.


2층으로 쌓은 기단부는 안정감 있게 세워져 있으며, 2층 기단부에는 한면에 3개씩 12지신상과 그 사이에 기둥을 새겨놓고 있다.


기단부 2층 몸돌에 새겨진 12지신상. 12지신상은 연화좌 위에 평복을 입고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십이지를 방위나 시간에 적용한 것은 중국 한대이며, 이를 열두동물과 연결시킨것은 불교사상에 영향을 받은 후대의 일로 당나라때 십이지산상이 묘지장식 등에 나타났다고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비교적 이른 시기인 경주 괘릉이나 김유신묘 등 무덤의 호석에 십이지신상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석탑에 12지신상을 사용한 것은 이 석탑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진 탑신. 1층 몸돌에 사천왕상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1츰몸돌에 새겨진 무장을 하고 있는 사천왕상은 돋을새김을 높게 새겨 아주 입체감 있게 만들어졌다.


1층 몸돌의 사천왕상


원원사지 삼층석탑 동탑.


뒷편에서 본 원원사지 삼층석탑. 두개의 탑과 석탑이 절터 가운데 나란히 세워져 있다.


동탑과 똑같은 형식을 하고 있는 원원사지 삼층석탑 서탑. 통탑에 비해서 훼손이 약간 더 심해 보인다.


서탑 기단부


기단부에 새겨진 12지신상.


삼층으로 이루어진 서탑 탑신부. 훼손된 부분이 많아 보인다.


탑신 1층 몸돌 사천왕상


서탑 탑신 1층 몸돌에 새겨진 사천왕상


경주 원원사지 삼층석탑 서탑


원원사지 절터에 나란히 서 있는 두개의 탑

경주 원원사지 삼층석탑, 보물 1429호,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원원사지를 지키고 있는 이 쌍탑은 부분적으로 파손된 곳이 유난히 많은 편이다. 이 탑들은 금당 앞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31년 가을에 경주고적보존회가 복원한 것이다. 전체 높이 약 7m로 상륜부는 노반과 앙화까지만 남아 있다. 2중 기단 위에 3층으로 건립된 이 탑의 전반적인 구성은 통일신라시대 전형석탑에 속하며, 기단과 탑신에 있는 뛰어난 조각으로 유명하다. 상층 기단면석에는 4면에 3체씩 연화좌 위에 평복을 입은 십이지신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1층 옥신 4면에는 각 1구씩 사천왕상이 아주 높은 돋을 새김으로 조각되어 있다. 이들 조각들의 섬세하고 유려함은 다른 석탑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이 쌍탑은 8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짐작되며, 이후 9세기 유행하는 같은 형식의 석탑 중 가장 빠른 예이다. <출처:경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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