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천년고도 경주에서 신라인들이 신성시 여겼던 장소 중 하나인 경주 낭산 서쪽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능지탑지이다. 이 곳은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능지탑이라 불리웠던 구조물의 일부가 남아 있다. 원래 이 탑이 있던 자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을 화장했던 장소라고 한다. 원래는 5층탑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는 옛터에 남아 있던 석재들을 모아서 기단부를 복원하고 탑신부분은 확인할 수 없어서 일부만 추정해서 복원해 놓고 있다고 한다.
능지탑지가 자리잡고 있는 경주 낭산은 경주 도삼 동남쪽 넓은 벌판 한가운데에 길게 누에처러 누워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낭산에는 남쪽언덕에는 선덕여왕릉이 있고 그 아래에 문무왕을 추도하기 위해 세운 사천왕사가 있다. 북쪽에는 삼국시대에 신라의 신성한 숲에 세워진 사찰 중 하나인 황복사 절터에 효소왕이 아버지 신문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능지탑이 세워진 자리는 낭산의 허리자락에 해당하는 곳이기도 하다.
천년고도 경주에서 신성시 여기는 장소 중 하나인 낭산 서쪽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능지탑지, 현재 복원되어 있는 것은 원래의 능지탑은 아니고 기단부만 일부 복원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 곳에서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을 화장하였다고 하며, 낭산 남쪽편에 그를 추모하기 위해 사천왕사를 세웠다고 한다.
기단부만 복원되어 있는 능지탑. 원래는 5층탑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탑신부는 남아 있는 석재들을 모아서 올려놓은 것으로 원래의 모습은 아니라고 한다. 이곳을 발굴할 때 소조불상 파편이 나왔기때문에 탑묘라고 보는 이도 있다고 한다.
기단부는 당시 왕릉이나 무덤처럼 12지신상을 둘렀다.
기단부의 12지신상
기단부를 쌓은 석축
탑신부는 1층만 볼 수 있는데, 원래의 모습은 아니고 남아 있는 석재로 옛모습을 추정하여 1층만 쌓았다고 한다.
탑신부의 석재
뒤쪽에서 본 능지탑
경주 낭산 중턱 능지탑지로 올라오는 길. 능지탑은 경주에서도 가장 차량통행이 많은 7번국도와 경부고속도로에서 경주로 들어오는 큰길이 만나는 배반사거리 동남쪽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능지탑과 공터만 남아 있는 능지탑지
능지탑 뒷편으로 들어가는 길. 안쪽으로 들어가면 낭산마애삼존불이 있다.
낭산 허리자락으로 올라가는 길
능지탑지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주남산의 북쪽끝자락
경주 능지탑지, 경주시 배반동
이 탑지는 낭산 서쪽 기슭에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건조물로 높이는 4.49m이다. 능지탑, 능시탑 또는 연화탑이라고도 부른다. 무너진 것을 다시 쌓을 때, 원형을 알 수 없어 2단만 쌓고 나머지 돌은 옆에 모아 두었다. 이 탑지는 문무대왕의 시신 화장터로 추정되며, 발굴할 때 굴방에서 큼직한 소조불상 파편이 나왔으며 탑묘였을 것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1979년 기단부를 복원하고 상부를 추정하여 정리 하였다. 원래는 기단 사방에 십이지신상을 세우고 연화문 석재로 쌓아 올렸던 5층탑으로 추정된다. <출처:경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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