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교동 교촌마을 서쪽편에 위치한 사적 246호로 지정된 재매정은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운 명장 김유신 장군의 집에 있던 우물이다. 1993년에 발굴조사를 하였는데 이 일대가 김유신 장군의 집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는 우물과 그 옆에 세워진 유허비를 중심으로 담장을 쌓아 놓고 있으며, 담장안에는 집터에서 발굴된 주춧돌 등 건축자재들이 진열되어 있다. 우물을 중심으로 여러곳에 건물이 들어섰던 자리들이 남아 있다.
삼국통일 당시 큰 공을 세웠으며, 금관가야계를 대표하는 귀족으로 태종 무열왕을 옹립하는데 큰 세력이 되었던 김유신 장군의 저택답게 그 규모도 상당히 컸던 것으로 보인다. 저택 앞으로는 월성 남쪽편으로 흐르는 남천이 지나가고 있고, 남천 너머로는 김유신과 관련된 전설이 남아 있는 천관사 절터가 있다. 이 주변은 통일신라시대에 많은 귀족들이 살았던 중요한 주거지역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동쪽편으로는 사마소와 통일신라시대 최고 교육기관이었던 국학이 있었던 자리에 위치한 경주향교가 있다.
경주의 왕궁이었던 반월성 서쪽편에 들판에 남아 있는 김유신 장군의 집터 가운데 위치한 재매정. 우물을 중심으로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담장 내부에는 우물인 재매정과 고종대에 세원 유허비가 있으며, 주변에 집터를 발굴하면서 출토된 주춧돌을 비롯한 건축자재들이 놓여 있다.
재매정은 화강암을 벽돌처럼 쌓아 올려 만들었는데, 우물의 깊이가 5.7m로 가장 넓은 부분이 1.8m이다. 바닥에는 다음을 돌이 깔려 있으며, 우물 위에는 판석을 덮어 놓고 있다. 경주에서 발견되는 많은 우물들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구한말인 고종대에 세워진 유허비.
우물주변 집터를 발굴조사하는 과정에서 출토된 주춧돌을 비롯한 건축자재들이 담장안에 진열되어 있다.
재매정 출입문
우물 동쪽편에 있는 건물터. 옛주춧돌을 본떠서 만든 주춧돌을 건물터에 올려 놓아 현장감을 강조하고 있다.
건물터는 상당히 넓었던 것으로 보이며, 건물터 동쪽편에는 조선시대 지역유지들이 회합장소인 사마소 건물이 있다.
재매정 서쪽편 건물터.
뒤편에서 본 재매정
재매정 주변의 넓은 집터
김유신 장군 집터 앞을 흐르는 남천. 멀리 남천을 건너는 통일신라시대 다리인 월성교 복원공사 현장이 보인다.
경주 재매정
재매정, 사적 246호, 경주시 교동
재매정은 신라 명장 김유신이 살던 집터라고 전해지는 이곳에 남아 있는 우물이다. 월성에서 서쪽으로 약 400m 거리에 남천을 바로 앞에 두고 위치해 있다. <삼국사기>에 김유신 장군이 백제와 싸워 크게 이기고 돌아오던 중에 백제군이 다시 침범하여 온다는 급보를 받았다. 장군이 쉴 사이도 없이 출전하는 길에 자기 집 앞을 지나게 되자, 병사를 시켜 물을 떠오게 하여 마신 다음 "우리 집 물맛은 옛날 그대로구나!" 하면서 떠났다는 기록이 있다. 우물은 깊이 5.7m, 바닥 지름은 1.2m 내외이고, 판석이 덮여 있다. 옆에는 고종 9년(1872)에 세운 유허비가 있다. <출처:경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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