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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산재, 신라를 건국한 6부촌장을 모신 사당

younghwan 2012. 6. 2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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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시 탑동 신라시조 박혁거세 탄생설화가 있는 우물제사 유적인 경주 나정 안쪽에는 박혁거세를 왕으로 옹립하고 신라를 건국한 사로6촌의 촌장을 모신 사당인 양산재가 있다. 이 사당은 7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문화재로서 의미가 있는 곳이라기보다는 경주와 신라의 건국을 설명해주튼 장소라 할 수 있다. 양산재는 6부촌장을 모신 사당과 앞쪽에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 건물, 양산재를 관리하는 살림집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사당 건물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 지역은 경주 남산의 북쪽자락에 있는 남산신성 아래의 마을로 신라 사로 6촌 중 돌산고허촌이 있었던 지역으로 보인다. 주변에는 남간사 절터가 있으며, 남쪽으로 경주 포석정이 자리잡고 있다.

 신라를 건국한 주체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로육촌은 알천 북쪽에 위치한 알천양산촌(경주 이씨), 남천 북쪽편에 위치한 돌산고허촌(경주 최씨), 월성 동쪽에 위치한 취산진지촌(경주 정씨), 서천 지류인 모량천 유역의 무산대수촌(경주 손씨), 북천 북쪽 백률사 부근의 금산가리촌(경주 배씨), 보문사 절터 부근의 명활산고야촌(경주 설씨)을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 주요 성씨의 시조이기도 하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6촌은 유리왕9년(32)에 6부로 개편되면서 이들 6촌에 성씨를 내렸다고 하는데,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성씨를 사용한 시기는 그 이후일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경주시 탑동에 소재한 신라를 건국한 6촌의 촌장을 모신 사당인 양산재.


양산재는 사당과 재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7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문화재로서의 의미보다는 신라를 건국한 6부촌장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당 앞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 건물


양산재 출입문


사당을 관리하는 관리인의 살림집


양산재 서쪽편으로 보이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 탄생설화가 있는 우물제사 유적인 경주 나정


양산재 안쪽으로 보이는 경주 남산.

양산재, 경주시 탑동
양산 아래 자리잡고 있는 이 재각건물은 6부 촌장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6부촌장은 신라가 건국되기 전 진한 땅에 알천양산촌, 돌산고허촌, 취산진지촌, 명활산고야촌의 여섯촌을 나누어 다스리고 있었는데, 서기전 57년 알천 언덕에 모여 알에서 탄생한 박혁거세를 여섯 촌장이 추대하여 신라의 첫 임금이 되게 하니 이 해가 신라의 건국년이 되었다. 그 후 신라 3대 유리왕이 6부촌장들의 신라건국 공로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 6부의 이름을 고치고 각기 성을 내리게 되니 바로 양산촌은 이씨, 고허촌은 최씨, 대수촌은 손씨, 진지촌은 정씨, 가리촌은 배씨, 고야촌은 설씨이다. 이로서 신라에 여섯 성씨가 탄생되었고 각기 시조 성씨가 되었다. 이 사당은 1970년 이들 6촌장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출처:경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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