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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 유적_왕릉

고양 서오릉(사적198호) 명릉,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

younghwan 2012. 8.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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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시 신도동에 위치한 서오릉(사적 198호)은 구리의 동구릉과 함께 조선왕실 능묘 중 가장 큰 규모로 세조의 맏아들인 덕종(추존)과 왕비의 능인 경릉, 예종과 왕비의 능인 창릉, 숙종의 원비의 능인 익릉, 숙종과 계비의 능인 명릉, 영조 원비의 능인 홍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밖에 순창원, 수경원, 대빈묘 등이 있다. 대체로 예종.성종대와 영조대에 조성된 왕릉이라 할 수 있다. 이 곳에 능지로 선택된 것은 1457년 세조의 장남(성종의 아버지로 덕종으로 추존)이 죽자 이곳을 세조가 답사한뒤 터를 잡으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왕릉의 면적은 약 51만평에 이른다. 

 서오릉에 모셔진 5곳의 왕릉 중 동쪽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명릉은 조선 19대 숙종과 계비인 인현왕후 민씨, 제2계비인 인원왕후 김씨의 능이 조성되어 있는 곳이다. 숙종은 조선시대 사극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왕으로 재위기간 46년 동안 4명의 왕비를 두었으나, 이곳에는 인현왕후 민씨와 제2계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이 같이 조성되어 있고, 원비인 인경왕후 김씨의 능인 익릉은 약간 떨어진 서오릉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화제의 인물이자 경종의 어머니인 장희빈의 묘인 대빈묘는 원래 경기도 광주시 오포면에 있던 것을 최근에 서오릉으로 이장했다고 한다. 명릉의 봉분은 조선 왕릉 중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숙종과 계비인 인현왕후의 무덤은 쌍분형태를 하고 있으며 2계비인 인원왕후 김씨은 능은 서쪽편 언덕에 있으며, 정자각을 같이 쓰고 있어서 이를 포함하여 명릉이라 한다. 숙종대에는 노론.소론.남인.북인 간의 당쟁이 심했던 시기로 숙종이 죽고, 경종이 즉위하던때는 노론이 집권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에게 연산군때의 일을 상기시키며, 그리 사이가 좋다고 볼 수 없었던 인현왕후와 숙종을 쌍릉형태로 능을 조성하여 왕을 압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역대 왕릉 중에서도 그 영역이 넓고 조경이 잘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숙종의 능인 명릉. 쌍분형태를 하고 있는 숙종과 인현왕후의 무덤이 앞쪽 언덕에 있고, 뒷편에 제2계비인 인원왕후의 무덤이 있다.


서오릉 입구에서 명릉으로 들어가는 길


왕릉 능역 입구임을 알려주는 홍살문


홍상문에서 정자각까지 직선으로 연결된 박석을 깔아 놓은 신도와 어도


명릉에서 제를 올리는 장소인 정자각


정자각 내부


정자각 월대에서 내려다 본 명릉으로 홍살문에서 정자각 사이의 공간


건물터만 남아 있는 수복방


정자각 동쪽편에 있는 비각


명릉은 앞쪽 언덕에 숙종과 인현왕후의 무덤이 쌍분의 형태로 조성되어 있으며, 뒷편에 제2계비 인원왕후의 무덤이 있다.


뒷편에 쌍분 형태로 조성되어 있는 숙종과 계비인 인현왕후의 무덤


쌍분 형태로 조성된 숙종과 인현황후의 무덤


무덤 앞에 세워진 문.무인석. 조선후기 왕릉의 정형화된 석물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봉분 앞 혼유석과 난간석. 봉분을 둘러싸고 있는 양석과 호석


불을 밝히는 장명등과 망주석


봉분 앞에서 내려다 본 정자각


안쪽에 위치한 숙종의 제2계비인 인경왕후 김씨의 무덤


명릉 입구에는 서오릉 전체를 관장하는 재실이 있다.

명릉
명릉은 조선 19대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 그리고 제2계비 인원왕후 김씨의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는 나란히 자리한 쌍분으로 쓰고, 인원왕후의 능은 옆에 따로 있어 같은 언덕에 배치되었다. 숙종은 왕비를 세번 맞아 들였는데, 원비인 인경왕후 김씨의 능인 익릉은 서오릉 안에 따로 있다. 숙종은 18대 현종의 아들로 태어나 현종 9년(1667)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674년에 왕위에 올라 재위 46년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예의에 관한 선비들 간의 논쟁과 장희빈을 중심으로 한때 인현왕후 민씨를 몰아낸 사건을 겪었으나, 상평통보를 주조하고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웠다. 재위 46년(1720)에 60세로 돌아가셨다. 인현왕후 민씨(1667~1701)는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딸로 숙종 7년(1681)에 숙종의 계비가 되었다. 숙종 15년(1689) 왕자 윤(뒤의 경종)의 세자 책봉 문제로 장희빈이 모함하여 폐위당하였다. 후에 장희빈이 몰락하면서 복위된 뒤 35세로 돌아가셨다. 인원왕후 김씨는 경원부원군 김주신의 딸로 숙종 28년(1702)에 왕비가 되었고, 영조 33년(1757)에 71세로 돌아가셨다. <출처:고양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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