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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특별전, 유리 3천년의 이야기] 유리로 만든 인장과 다양한 장신구

younghwan 2013. 2. 2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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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는 청동기시대 지금부터 4천년 전인 기원전 2000년 경 북부 메소포타미아지방과 이집트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이 유리는 일상생활용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으며, 기원전 1500년 경에 유리용기가 만들어진 이후 용기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기원전 100년 경 시리아에서 대롱불기 기법이 발명된 이래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생활용품으로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은 유리가 그릇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유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부터 보석처럼 다양한 빛깔의 표현이 가능하고 제조공정을 통해서 다양한 형태로 만들 수 있었기때문에 그릇 이외에도 보석의 대용품으로서 반지, 목걸이, 펜던트 등 다양한 장신구를 만드는데 사용되어 왔다. 또한 보석의 중요한 용도 중 하나인 지배층의 권위를 상징하는 다양한 인장도 만들어 사용되어 왔다.

고대 오리엔트에서는 단지의 뚜껑이나 짐꾸러미의 매듭에 인장을 찍은 점토를 붙여서 봉인하곤 했다. 기원전 6000년 무렵부터 돌로 만든 인장이 사용되었고, 기원전 3200년경에는 굴려서 찍는 원통형의 인장이 주류가 되었다. 하지만 점토 위에 찍는 쐐기문자가 사라지고 양피지에 쓰는 전통이 생기면서 기원전 11세기 중반부터 다시 눌러 찍는 인장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이 무렵부터 투명하고 아름다운 색을 내는 유리로 만든 인장이 등장했다. 인장마다 반지나 끈에 꿸 수 있도록 관통하는 구멍이 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인장1(메소포타미아~이란, 기원전 5~4세기), 갈색 투명 유리로 만든 원추형의 인장으로, 바닥면에 그림이 새겨져 있다. 중앙에 가장 큰 인물은 왕으로 보이는데, 좌우의 스핑크스로 보이는 날개달린 동물을 양손에 잡고 있다. 인장2(메소포타미아~이란, 기원전 5~4세기), 녹색 투명 유리로 만든 원추형의 인장으로 중앙의 왕이 날개 달린 산양을 제압하여 양손에 든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인장3(이란, 기원전 3~ 7세기), 녹색 투명의 반구형 인장이다. 날개 달린 페가수스와 함께 사산조 시대의 파흘리비문자로 길상을 기원하는 문구. '...에 영광이 있기를'이 새겨져 있다. 인장4(메소포타미아~이란, 기원전 5~4세기), 무색 투명 유리를 사용한 스카라베 모양의 인장이다. 살 8개짜리 바퀴를 단 마차에 전사와 마부가 타고 있고, 뒤쪽에서 전사가 사자를 물리치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인장5(메소포타미아~이란, 기원전 5~4세기), 무색 투명 유리를 사용한 스카라베 모양의 인장이며, 날개 달린 스핑크스가 새겨져 있다. 인장6(메소포타미아~이란, 기원전 5~4세기), 왕관을 쓰고 단검을 든 왕이 풍성한 갈기를 가진 사자와 겨루고 있다. 그 아래에는 날개 달린 스핑크스가 앉아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인장7(메소포타미아~이란, 기원전 5~4세기), 이집트의 스카라베(쇠똥구리 모양 부적)와 유사하게 만든 인장으로, 풍성한 갈기를 가진 사자와 싸우는 왕의 모습을 새겼다. 이 같은 주제의 인장은 왕의 위세를 과시하려는 목적이 있다.


인장8(메소포타미아~이란, 기원전 5~4세기), 태양을 상징하는 날개달린 원반을 올린 성스러운 나무를 중심으로, 좌우에 왕후가 무릎을 꿇고 예배하고 있다. 이 시기에 흔히 쓰인 모티브로, 돌로 만든 원통형 인장에 다수 전한다.


인물흉상 새김 장신구(이란, 3~7세기), 음각새김 장신구(동지중해 연안, 4세기),


고리달린 봉(동지중해 연안, 1~2세기), 머리 장식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용도가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구슬장식 청동제 핀(에트루리아, 기원전 6~3세기)


귀걸이(2~3세기), 로마시대에는 귀걸이에 진주를 많이 사용했는데, 이와 같이 유리를 사용하기도 했다. 꽈배기 문양 반지(동지중해 연안 ~ 이란, 4세기경), 갈색 바탕 위에 가는 흰 선을 넣고, 녹색과 청색 구슬을 박아 넣었다. 어른이 사용하기에는 매우 작아서 아마도 어린아이 무덤의 부장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뚜껑달린 반지(동지중해 연안, 기원전 3~1세기), 매우 작은 공간이 투껑과 반지 사이에 있는데, 반지는 언제나 몸에 지니는 것이므로 여기에 소중한 물건을 넣어 다닌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여인상 카메오(동지중해 연안,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 서명 반지 장식(동지중해 연안, 기원전 3~1세기), 헬멧을 쓴 남성의 옆얼굴이 새겨져 있다. 마노 등의 보석 반지를 모방하여 만든 것으로 인장으로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인물문모양 메달리온(파키스탄, 1~3세기), 메두사 카메오(파키스탄, 2세기), 음각새김 장신구(시라아, 1~3세기)

유리구슬은 출토 정황이 명확한 경우가 드물어 종종 제작 시기와 지역이 다른 구슬을 후대에 새롭게 엮은 것도 많다. 하지만 이런 목걸이를 통해 코어 성형 기법이나 모자이크 성형 기법 등 고대의 기법이 장신구 제작에 1000년 이상 쓰이면서 지속적으로 애호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목걸이(동지중해 연안~이란, 기원전 3세기 ~ 기원후 3세기),

골드샌드위치 유리 구슬은 틀 위에 금박을 씌운 유리를 놓고 그 위에 다시 녹인 유리를 부어서 유리가 금박을 감싸도록 만든 것이다. 이 기법은 이집트에서 시작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금은 880도가 넘으면 녹아버리기 때문에 이를 넘지 않는 600~800도에서 녹는 유리만 사용해야 한다. 유리뿐만 아니라 금속도 잘 다루어야 하는 기법으로, 비잔틴 시대까지 이어졌다. <출처:중앙박물관>


골드 샌드위치 구슬(동지중해 연안, 기원전 3세기 ~ 기원후 3세기)


목걸이(동지중해 연안 ~ 이란, 기원전 3세기 ~ 기원후 3세기)


목걸이(동지중해 연안 ~이란, 기원전 3세기 ~ 기원후 3세기)


목걸이(동지중해 연안 ~이란, 기원전 3세기 ~ 기원후 3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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