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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박물관] 신라와 가야의 꾸미개 (금동관, 관장식, 장신구 등)

younghwan 2013. 4. 2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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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박물관에서는 대구.경북지역 고분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유물들을 주로 전시해 놓고 있는데 주요 출토지역으로 원삼국시대에 쌓은 토성으로 달구벌국의 중심지였던 대구 달성을 비롯하여 경산, 김천, 의성, 상주 등 신라의 지방세력을 비롯하여 고령, 성주지역의 가야연맹체 세력의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신라 지방세력의 무덤에서 출토된 꾸미개들은 그 구성이나 형태에 있어서 경주의 고분에서 출토된 것들과 비슷하며, 경주와는 달리 금관은 출토되지 않고 있다. 출토된 유물로는 신라금과과 비슷한 '出'자 모양의 장식을 한 금동관과 깃털모양의 금동관, 날아가는 새의 날개 모양을 하고 있는 관장식, 원삼국시대 중국과 서역의 영향을 받은 동물모양 허리띠와 신라와 비슷한 북방유목민의 영향을 받은 허리띠.드리개 등 다양한 꾸미개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신라와 마찬가지로 상감무늬를 한 모자이크구슬도 볼 수 있다.

 꾸미개는 금관을 비롯하여 허리띠 관모, 관꾸미개,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반지, 신발 등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금관을 남겨놓고 있는 신라는 금.은.금동을 이용하여 만든 다양한 꾸미개를 무덤의 부장품으로 남겨 놓고 있다. 이러한 꾸미개는 몸을 장식하는 기능도 있지만 정치적.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며 무덤 부장품의 경우 죽은이를 사후 세계로 보내는 종교적인 의미도 있다고 할 수 있다. 

달성토성에 살았던 사람들
달성토성은 대구분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구릉에 위치한 포곡식 토성이다. 대구에서는 기원 전후 달구벌국이 있었으며, 달구벌국의 정치적 중심지가 바로 달성토성, 현재의 달성공원을 중심으로 하는 내당동, 비산동, 평리동 일대이다. 달성토성은 4세기 이전에 토성의 형태로 조영되었으며, 인근에 위치한 달성고분군의 분포는 당시 세력집단이 꾸준히 성장하였음을 알려준다. 또한 달구벌이 신라에 통합된 후에도 달성토성은 신라의 주요 거점으로 기능하게 되고, 신문왕 때에는 천도사업을 추진하였다. 일제강점기에 확인된 삼국시대 고분은 87기로 봉분의 지름은 대체로 10~30cm 정도이다. 달성고분군에서는 금동관, 금귀걸이, 은제허리띠, 고리자루칼, 재칼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금동관은 경주지역에서 출토되는 것들과 동일한 맞가지형의 세움장식이 있다. 토기는 전형적인 신라양식의 토기로 대구지역이
신라의 정치적.문화적 발전과 함께 했음을 알려준다. <출처:대구박물관>


금동관(대구 비산동, 삼국시대), 삼국시대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금동관은 왕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경주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순금제보다는 금동제가 보편적으로 제작되었다. 가야의 금동관은 기본적인 형태에 있어서는 신라와 비슷하지만, 드리개의 형태나 곱은옥의 유무 등 약간의 차이가 보인다. <출처:대구박물관>

대구 달성은 원삼국시대 대구지방 토착세력이 고대국가를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쌓은 토축성으로 평탄한 지역의 낮은 구릉에 토축을 쌓아서 만든 성곽으로 그 형태가 경주 궁성이었던 월성과 비슷하다. 둘레 약 1.4 km 정도로 성곽내부에는 관아가 들어설 수 있는 소규모 읍성 정도의 규모이다.

신라와 가야의 왕관
관은 지배계급이 신분적 권위를 보여주는 장신구 가운데 대표적인 위세품이다. 관은 외관과 내관 및 관식으로 구성되고 착용한 사람의 신분에 따라 재질이 달랐다. 신라의 관은 특유의 나뭇가지 모양의 맞가지장식과 사슴뿔모양의 엇가지장식이 대칭으로 세워진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맞가지와 엇가지장식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매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 의성 탑리에서 출토된 것과 같이 새 깃털모양의 세움장식도 있다. 내관은 폭이 좁고 윗부분이 둥그스름하게 만들어진 세모꼴이다. 가야의 금관으로는 고령 출토로 전하는 금관 1점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금동관이다. 가야의 관은 풀꽃모양 세움장식이 기본적이지만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통일된 양식도 없다. 이것은 가야연맹체가 하나로 통일되지 못했던 것과도 관계가 있다고 보여진다. <출처:대구박물관>


금동관(의성 탑리, 삼국시대)


금동관(대구 비산동, 삼국시대)

관장식
관장식은 유기질의 모자 앞에 세워 붙이는 장식물이다. 신라의 관장식 중에는 은제품이 가장 많고, 금이나 금동제품은 적은 편이다. 날개를 펴고 나는 새나 나비 모양 장식도 있다. 이처럼 관장식에 새의 날개를 표현한 것은 아마도 무덤 주인을 하늘로 데려가 달라는 기원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대구박물관>


은제관장식(경산 임당동, 삼국시대)


금동제관장식(의성 탑리, 삼국시대),


나비모양관장식(의성 탑리, 삼국시대)

허리띠.드리개
허리띠구미개는 버클에 해당하는 띠고리, 허리띠 끝에 다는 띠끝꾸미개, 가죽 또는 비단 허리띠의 겉면을 꾸미는 띠꾸미개, 허리띠에 매달아 드리우는 띠드리개로 구성된다. 띠드리개는 경주지역에서는 순금제가 많이 제작되었으며, 가야를 포함한 다른 지역에서는 은제품이 대부분이다. 드리개의 끝에는 곱은옥, 작은칼, 집개, 물고기, 바늘통, 숫돌 등의 장식이 매달려 있다. 이러한 드리개를 갖춘 허리띠는 북방 유목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출처:대구박물관>


허리띠 드리개(경산 조영동, 삼국시대). 유목생활을 하던 북방 유목민들이 다양한 도구들을 매달고 다니던 허리띠를 형상화한 것으로 북방유목민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유물이다.


말모양 허리띠고리(상주 신흥리, 삼국시대). 동물모양 허리띠고리는 중국 한나라때 서역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유물로 삼한시대와 원삼국시대에 주요 지방세력의 고분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는 유물로 동.서교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금동신발(의성 탑리, 삼국시대)


목걸이(대구.경북지역, 삼국시대)


모자이크구슬(삼국시대). 서역에서 만들어진 것을 수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구슬로 경주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는 유물이다.


금귀걸이(김천 희곡리, 삼국시대), 금반지(경산 임당동, 삼국시대), 은반지(경산 임당동, 삼국시대), 은팔찌(경주 노서동, 삼국시대), 금제반구형장식(경산 임당동, 삼국시대)



금귀걸이(대구.경북지역, 삼국시대)


굽은옥(대구.경북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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