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구도심 계산동성당 뒷편에 위치한 이상화고택은 일제강점기 저항시인을 대표하는 이상화시인이 만년에 살았던 고택이다. 이 지역은 옛 대구읍성 서쪽편에 위치하고 있는 대구약령시와 가까운 주거지역으로 대구에서도 상류층 사람들이 주로 모여 살았던 곳으로 지금은 '대구근대화골목'으로 불리운다. 근처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이끌었던 서상돈이 살았던 고택을 비롯하여 여러채의 한옥들이 남아 있다. 이상화고택은 조선시대에 지어진 한옥은 아니고 일제강점기에 많이 지어졌던 대구지역 도시형 개량한옥이라 할 수 있다. '건물은 ㅁ'자형으로 이루어진 서울 북촌의 한옥과는 달리 '-'자형 한옥형태를 하고 있는 안채와 문간채처럼 대문과 붙어 있는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옥은 인근 서상돈고택과 함께 1999년 도시개발로 허물어질 위기에 있었으나 시민들의 모금활동과 서명운동으로 대구시에 기부채납되어 보존될 수 있었다. 최근에 새롭게 단장되어 대구근대화골목을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이상화(1901~1943년)시인은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저항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다른 의미가 있었다는 의견도 있기는 하지만 그의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윤동주의 <서시> 등과 함께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저항시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대구지역 명문가에서 태어나 서울 중앙학교를 다녔으며, 삼일만세운동을 모의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는 1920년대 박종화 등과 함께 <백조> 동인에 참여하였고 현진건, 홍사용 등 당대의 문인들과 교류하였다. 1930년대에는 주로 대구 교남학교 교사를 역임하면서 작품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대구 계산동 대국 근대골목에 남아 있는 민족저항시인 이상화 고택이다. 이상화는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민족시인이자 저항시인으로 이곳은 이상화가 말년(1939~1943)을 보낸 역사적인 장소이다. 전통한옥을 개량한 도시형 한옥으로 안채와 문간채겸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토담을 쌓은 전통한옥과는 달리 붉은 벽돌담장을 하고 있다. 이 지역은 대구지역에서 부유층들이 살던 주거지역을 일제강점기 주택의 모습이 잘 남아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이상화가 마지막으로 숨을 거둔 안방이 있는 안재. 안방과 대청마루로 이루어진 '-'자형 전통한옥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바깥쪽으로 유리창이 있는 문을 달아 놓고 있다.
이상화 시인이 손님을 맞고 독서를 하던 사랑방. 대문과 연결된 문간채의 형태를 하고 있다.
유품들이 전시된 사랑방 내부
이상화 고택 마당
마당 한쪽편 붉은 벽돌을 쌓아 만든 장독대와 수동펌프. 펌프는 일제강점기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부유층 저택에 주로 설치되었던 시설이다.
고택담장은 원래 있던 것은 아니고 근처 다른 건물이 있던 비슷한 담장을 옮겨 복원하였다고 한다.
시민이 지켜낸 상화고택,
본 고택은 친구들과 제자들을 맞이하던 사랑방, 울적한 마음을 달래던 감나무 마당, 상화가 숨진 안방 등 상화의 삶이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지역개발로 흔적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상화고택을 보존하기 위해 2002년부터 대구지역 문화계 인사들과 시민들은 '상화고택보존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40만명의 시민이 상화고택보존을 위한 서명운동에 참여했고, 많은 시민들이 보존에 필요한 자금을 모아주었습니다. 또한 군인공제회에서 상화고택을 매입하여 대구시에 기부채납하였고, 이상화기념사업회 등 많은 문학계 단체들이 뜻을 모았습니다. 특히 유족과 뜻있는 문인들이 이상화와 관련된 많은 유물과 자료를 기증하여 주었습니다. 이러한 많은 이들의 마음과 노력으로 우리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민족시인 이상화의 정신과 예술혼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출처:대구시청>
이 고택은 도심개발로 헐어질 위기어 놓였던 것은 시민운동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대구 근대골목에 남아 있는 이상화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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