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전국 사찰

문경 봉암사, 현대불교에 큰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수행사찰

younghwan 2013. 6. 20. 15:03
반응형


 봉암사는 문경시 가은읍 희양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이다. 김천 직지사의 말사로 되어 있지만 승려들이 수행하는 대표적인 참선승방으로  사찰의 규모가 상당히 크고 조계종 내에서도 그 위상이 높다. 사찰내에는 국보로 315호로 지정된 지증대사탑비를 비롯하여 보물로 지정된 지증대사 승탑, 정진대사 승탑과 탑비, 삼층석탑, 극락전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사찰의 가람배치는 원래 삼층석탑이 있는 경내 마당을 중심으로 대웅전과 요사채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이며, 최근에 동쪽편에 큰 규모의 대웅전을 짓고 주불전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사찰 서쪽편에는 대표적인 참선도량답게 큰 규모의 승방을 두고 있다. 이 사찰은 일반 신도에는 석가탄신일에만 개방하고 있는 참선도량답게 다른 사찰에 비해서 승려들이 수행하는 요사채건물이 상당히 크고 많은 편이다.

 봉암사는 통일신라말 헌강왕대인 879년에 지증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 선종계통의 종파인 구산선문 중 하나인 희양산파의 종찰로 참선을 중시하는 대표적인 선도량으로 오늘날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봉암사는 고려시대에는 쇠퇴하였다가 조선 태조대에 정진대사가 크게 중창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 불전과 요사채 건물들은 여러차례의 화재로 인해 오래된 것은 없고 그 중 조선중기에 세워진 목탑처럼 2층건물로 보이는 극락전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봉암사가 수행사찰로서 큰 위상을 갖게 된것은 1947년 성철을 중심으로 많은 승려들이 결사운동으로 오늘날 조계종의 모습을 갖추게 한 장소로서 현대불교에서 큰 의미를 갖기때문이다.


충북과 경북의 경계를 이루는 희양산 남쪽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봉암사. 참선을 중시하는 선종계열 사찰로 통일신라 구산선문 중 하나인 희양산파의 종찰이다.


문경 봉암사는 조계종에서 정한 수행도량으로 일년에 석가탄신일 하루만 일반에 개방된다. 5월의 초록빛으로 물든 봉암사 입구에 들어서면 우뚝 솟은 바위산인 희양산 봉우리가 제일 먼저 맞아 준다. 희양산은 해발998m로 경북 문경시와 충북 괴산군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문경새재와 속리산 사이에 위치한 바위산이다.


봉암사 들어가는 숲속길. 계곡을 따라서 난 길은 물소리.새소리를 들어면서 걸을 수 있는 산책하기에 좋은 길이다.


희양산에서 흘러내려오는 계곡.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계곡이라 그런지 상당히 맑고 깨끗하다.


봉암사 일주문은 사찰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하나로 18세기 초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국의 사찰 일주문 중에서도 그 내력은 깊은 출입문이라 할 수 있다.


사찰로 들어가는 길옆으로 '나무아미타불'이라 글이 적힌 바위를 볼 수 있다.


사찰 앞 계곡을 건너는 다리. 개울은 속세의 때를 씻는다는 의미를 갖는 건물 배치라 할 수 있으며, 궁궐입구의 금천과 비슷하다.


봉암사 앞을 흐르는 맑은 계곡


다리를 건너면 사찰을 찾는 신도들이 쉬어가는 공간이자, 법회를 여는 장소인 누각.강당 건물이 보인다.


봉암사 들어오는 길


봉암사 누각 강당인 남훈루. 최근에 지어진 상당히 큰 규모의 건물로 전통사찰의 강당건물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봉암사 강당인 남훈루를 지나면 주불전인 대웅전이 있는 경내로 들어선다.


문경 봉암사의 주불전이 대웅전. 앞면 7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건축물로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서쪽편 삼층석탑이 있는 곳에 위치한 금색전이 대웅전이었는데 최근에 옮긴 것으로 보인다. 전통사찰의 주불전에 비해서 상당히 크다. 이곳에서 수행하는 많은 승려들이 같이 불공을 드릴 수 있도록 크게 지은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 입구 계단과 사자상.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사찰경내에 걸어 놓은 연등들


대웅전 동쪽편으로 2층건물처럼 보이는 이 사찰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전(보물1574호)이 있다. 이 불전은 외관상 2층건물처럼 보이는 독특한 형태의 건물을 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단층건물이지만, 바깥쪽에 1칸씩 차양칸을 둘러서 2층건물처럼 보인다. 이건물은 신라 경순왕이 피난하였다는 건물이라고 하나, 현재의 건물은 대체로 조선 중.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원래 불전이 있었던 자리로 기단과 초석은 고려시대 것이라고 한다.


극락전 안쪽에 있는 작은 산신각


대웅전 앞 동쪽편 요사채 건물. 지붕이 높고 앞면 7칸의 큰 건물이다.


사찰 동쪽편 한옥형태를 하고 있는 요사채. 봉암사 주지가 머무는 공간이라 한다.


극락전과 요사채가 있는 동쪽편 공간


대웅전 앞 서쪽편 요사채.


대웅전 앞 경내 서쪽편 희양산 봉우리를 배경으로 원래 주불전인 금색전과 삼측석탑이 있는 공간이다.


지금은 수리중인 봉암사 삼층석탑(보물169호).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당시 일반적인 석탑과는 달리 기단부가 1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성기때 만들어진 석탑답게 전체적으로 구성품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는 석탑이다.


희양산 봉우리를 배경으로 세워졌던 금색전. 원래 대웅전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앞면 3칸의 전형적인 불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건물뒷편에 남아 있는 대웅전 현판


건물 뒷편으로는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조사전이 있다.


대웅전 뒷편으로 봉암사를 대표하는 문화재인 지증대사승탑과 탑비가 세워져 있다.


지증대사의 사리를 모신 승탑(보물137). 통일신라시대의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조각수법을 볼 수 있는 승탑이다.


승탑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비파와 생황 등을 연주하는 모습을 새겨놓고 있는데 당시 악기 모습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국보 315로 지정된 탑비. 당대 문장가이자 학자인 최치원이 글을 지었다고 한다. 비석에 당시 불교사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어 불교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내용이다.


사찰 서쪽편에 위치한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이 선원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문이 굳게 닫혀 있는 승려들이 수행공간의 승방


선원내 요사채 건물


사찰 강당 앞 넓은 공간


강당 동쪽편 요사채


삼층석탑이 있는 공간 앞 요사채. 사찰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묵었던 공간으로 보인다.


범종각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