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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China)

[중국 취푸(曲阜)] 공묘(孔庙), 홍도문(弘道门)과 대중문(大中门)

younghwan 2014. 2. 20.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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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경 공묘(孔廟)와 함께 공자를 모시는 사당을 대표하는 취푸(曲阜)의 공묘(孔廟)는 춘추전국시대 공자가 죽은 후 그를 모시는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면서 2천년 이상 존재해 왔던 곳으로 중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많은 나라 사람들이 숭상했던 곳이다. 공묘는 한나라 고조가 이곳에서 제사를 올린 이후 역대 황제들로부터 존중을 받아왔으며 그 영역 또한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공묘는 취푸읍성 남문을 들어서면 첫번째 패방에서 시작하여 대성전까지 직선으로 삼도(三道)가 이어진다. 첫번째 출입문인 영성문과 2번째 출입문인 성시문, 3개의 패방을 지나면 자금성의 금수(金水)에 해당하는 벽수(璧水)를 지나는 다리인 벽수교(璧水橋)를 만나게 된다. 이런 건물배치 양식은 명나라 이후 공묘(孔廟)를 크게 중건하면서 궁궐양식을 반영했기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벽수교를 지나면 우리나라 궁궐문과 비슷한 양식을 하고 있는 3번째 출입문인 홍도문, 다시 정원을 지나면 4번째 출입문인 대중문을 만나게 된다. 홍도문은 명나라때 세워졌고, 대중문은 북송대에 세워졌다고 한다. 홍도문과 대중문 사이에도 역시 측백나무가 빽빽히 심어져 있는 정원을 볼 수 있는데, 이곳에 심어진 나무는 바깥쪽에 비해서 비교적 수령이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공묘(孔廟) 2번째 출입문인 성시문(圣时门)을 지나서 측백나무들이 심어진 넓은 정원을 지나 삼도(三道)를 따라서 들어가면 궁궐이나 능역에서 볼 수 있는 바깥세상과 성역을 분리하는 벽수(璧水)가 흐르고 있고, 3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벽수교(璧水敎)가 나타난다.


공묘(空廟) 벽수교(璧水橋, Bishui Bridge)는 명나라 홍치 13년(1500)에에 세워진 것으로 현재의 것은 청나라때 중건된 것이라 한다. 삼도(三道)의 형식을 하고 있는 공묘에서는 가운데 넓은 다리가 있고, 양쪽에 작은 다리가 놓여 있다. 북경 자금성 다리와 비슷하게 대리석으로 지은 아치형 돌다리이다.


가운데 넓은 다리


양쪽편 좁은 다리


벽수(璧水)는 성균관이나 문묘를 일컫는 말로 자금성의 금수(金水), 경복궁의 금천(錦川)과 같은 역할을 한다.


벽수교를 지나 홍도문으로 이어지는 삼도(三道). 우리나라와는 달리 가운데는 계단에 답도가 있는 것으로 볼 때 황제의 가마가 지나가는 길로 보인다.


벽수(璧水)를 지나 첫번째 문이자, 3번째 출입문인 홍도문(弘道门, Hongdo Gate)이다. 홍도문은 성문형태를 하고 있는 성시문과는 달리 궁궐 정전 출입문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홍도문은 명나라 홍무10년(1377)에 세워진 것으로 명나라 이전 원래 공묘의 출입문이었다.

홍도문(弘道门, Hongdo Gate)
It was first built in tenth year under the reign of Hongwo of the Ming Dynasty(1377) and was the entrance gate of the Confucian Temple in the early years of the Ming Dynasty. Hongdo Gate was named by the Emperor Shizong of Qing Dynasty on the basis of the saying "Man can broaden the way while the way do not broaden man" of Confucius and was bestowed the stele inscribed by the emperor. <출처: 취푸시청>


홍도문 편액. "홍도문(弘道门)"은 "사람은 길을 넓힐 수 있어도, 길은 사람을 넓힐 수 없다."라는 공자의 말씀에 근거하여 청나라 옹정제가 이름을 지어 현판을 하사한 것이라 한다.


홍도문은 우리나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다포계 공포를 하고 있다. 중국 자금성을 비롯하여 많은 건물들은 청나라 이후 벽돌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명나라대에 지어진 홍도문은 한국의 목조건축물과 비슷한 양식을 하고 있다.


홍도문 사이로 보이는 측백나무가 심어진 넓은 정원


성시문에서 홍도문으로 이어지는 삼도(三道)와 측백나무가 심어진 정원


홍도문에서 4번째 출입문이 대중문까지 이어지는 길


공묘 홍도문


정원에는 측백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는데, 홍도문이 명대이전까지 정문이었기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오래된 고목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아주 오래된 측백나무. 이제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4번째 출입문인 대중문.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정문격인 홍도문에 비해 간소한 느낌을 주고 있다. 대중문(大中门)은 북송대 처음 세워져 공묘(孔廟)의 출입문으로 사용되었다. 현재의 출임문은 명나라 홍치 13년(1500)에 중건된 것이라고 한다.

대중문(大中门, Dazhong Gate)
First built in the Song Dynasty, it was the entrance gate of Confucian Temple in the Northen Song Dynasty. It was rebuilt in the thirteenth year under the reign of Hongzhi of the Ming Dynasty (1500) and was bestowed the stele inscribed by the Emperor Gaozong under the reign of Qinglong of Qing Dynasty. <출처:취푸시청>


대중문 현판. 현판 글씨는 청나라 건륭제가 직접 쓴 글씨라고 한다.


홍도문에서 대중문으로 들어오는 길.


대중문을 들어서면 공묘가 생긴 이래로 유명한 인사들이 글씨를 세겨 놓은 비석들이 정원을 가득 채우고 있다.


공묘 대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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