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密敎)는 비밀의 가르침이란 뜻으로 문자나 언어로 표현된 현교(顯敎)를 초월한 최고의 가르침을 말한다. 인도에서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대승불교로 다라니(陀羅尼)라 부르는 주문을 중시하며 법신불(法身佛)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대일경(大日經)>과 <금강정경(金剛頂經)>이 주요 경전이다. 중국에서는 밀종(密宗), 한국과 일본에서는 진언종(眞言宗)이라고 하며 티벳불교도 밀교에 속한다.
한국의 밀교는 삼국시대 신라 명랑법사(明朗法師)가 당나라에서 귀국하면서 본격적으로 전래되었으며 밀본(密本)도 선덕여왕의 질병을 치유하는 등 밀교 전파에 공헌하였다. 이후 혜통(惠通)은 당나라에서 선무외(善無畏, 637-735년)엑 정통 밀교를 배우고 돌아와 해동진언종을 열었다. 당나라에서 활동하며 인도를 다녀와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혜초(蕙草)도 대표적인 밀교 승려이다. 통일신라 때 밀교는 왕실과 지배계층의 후원을 받아 호국적인 성격을 보였으며 경주 사천왕사(四天王寺), 원원사(遠願寺)가 대표적인 사찰이다. 중국 당나라에서 전래된 오대산신앙과 사리탑에 <무구정광다라니경>을 봉안한 사리탑신앙도 통일신라 밀교의 중요한 경향이었다.
경주 사천왕사(四天王寺)
사천왕사(사적 8호)는 경주에서 신성한 숲으로 여겨졌던 신유림(神遊林)에 세운 칠처가람 중 하나이다.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처음 지은 사찰로 당나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명랑법사의 권유로 창건되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선덕여왕이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줄 것을 유언했다고 하며, 사천왕은 불교에서 수미산입구를 지키던 천왕들로 선덕여왕릉이 있는 낭산이 수미산임을 상징하는 의미를 갖고 있고, 그 예언이 실현시켜준 사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천왕사는 건물은 없어지고 남북 105m, 동서 73m의 절터만이 남아 있다. 통일신라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쌍탑식 가람배치를 한 첫번째 사찰이다. 건물은 금당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중문지, 북쪽에는 강당지가 있고, 금당 앞에 목탑터 2곳이 남아 남아 있다. 절터 입구에는 머리가 없어진 귀부 2기와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을 위해 지었던 사찰로 볼 수 있으며, 이 사찰에 있던 문무왕 비(碑) 상단부가 최근에 경주의 주택 마당에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다.
사천왕사는 금당을 중심으로 그 앞에 2개의 목탑이 조성된 쌍탑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감은사, 불국사 등 통일신라시대에 많이 조성되었던 쌍탑식 가람배치를 처음 시도했다고 한다. 뒷편에는 제단이 있던 건물터가 있는데 주술적인 밀교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목탑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가구식기단을 사용했다. 목탑터에는 건물 구조에 맍게 주춧돌이 놓여 있으며 가운데에 사리를 보관하는 심초석이 있다. 절터에서는 목탑 기단부를 장식하고 있던 녹유사천왕상이 출토되었는데 출토 유물중 가장 인상적인 유물이다. 동시대에 활약한 조각가 양지스님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절터 입구에는 거북모양을 하고 있는 2기의 비석받침돌이 남아 있는데 태종무열왕릉에 남아 있는 거북받침돌과 비슷한 형태이다. 사천왕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문무왕 비(碑)는 조선후기 조선 정조 20년(1796)에 경주부윤 홍양호가 발견하였으며 최근 주택가에서 문무왕비 상단부로 추종되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경주 원원사지(遠願寺址)
원원사(사적 46호)는 경주 남쪽 관문성 부근에 있는 사찰이다. 통일신라 밀교를 이끈 안혜, 낭유 등과 김유신, 김술종 등이 국가의 평화를 기원하면서 창건하였다. 낭산의 사천왕사와 함께 고려전기까지 밀교의 중심 사찰이었다. 절터에는 금당터와 동,서삼층석탑(보물 1428호), 석등 등이 남아 있고 중건된 사찰인 원원사가 절터 앞쪽에 자리잡고 있다.
원원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1429호)은 2개의 탑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 쌍탑이다. 2개의 모두 같은 양식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놓고 있다. 기단에는 연화좌에 앉아 있는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으며, 탑신 1층 몸돌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이 석탑은 십이지신상을 통일신라 석탑 중 처음으로 배치한 것이다. 십이지신은 『약사경(藥師經)』을 외우는 불교인인 지키는 신장이다. 삼국시대에는 밀교의 영향으로 호국적인 성격을 가졌으나 이후에는 방위신의 역할을 바뀌었다.
오대산(五臺山) 신앙
오대산 신앙은 산악숭배와 문수신앙, 밀교가 융합된 신앙으로 중국 당나라에서 유래하였다. 오대산은 밀교의 밀교의 본지수적(本地垂適)과 만다라(曼茶羅)에 근원을 두고 있다. 중국 밀교에서는 밀교적인 관음과 지장신앙을 전개하였으며 오대산을 중심으로 문수신앙을 전국적으로 확대시켰다. 한국의 오대산신앙은 선덕여왕 때 자장(慈藏)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크게 발전하지 못하고 8세기초 보천(寶川)에 의해 본격화되었다. 동시대 신라에는 뛰어난 밀교승들이 있어 당나라 오대산 신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오대산은 동.서.남.북.중앙의 봉우리에 각각의 대(臺)가 있어 오대(五帶)라 불린다. 동대(東臺) 만월산에 관세음보살, 서대(西臺) 장령산에 대세지보살, 남대(南臺) 기린산에 지장보살, 북대(北臺) 상왕산에 미륵보살, 상원사에는 문수보살이 상주하면 설법을 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오대신앙의 근원지인 적멸보궁이 있다고 여겨진다.
오대산 월정사(月精寺)
월정사는 643년(선덕여왕12)에 자장(慈藏)이 창건한 사찰이다. 자장은 중국 오대산(五臺山)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 사리를 모시어 귀국한 뒤 적멸보궁(寂滅寶宮)에 사리를 봉안하였다. 삼국시대에는 작은 암자의 형태로 유지되다가 이후에 사찰로서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고려초기 팔각구층석탑이 조성된 것으로 볼 때 지역을 대표하는 주요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월정사는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세조가 여러차례 방문하였으며 실록(實錄)을 보관하는 사고(史庫)를 두는 등 왕실의 원찰 기능을 했던 사찰이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국보 48호)은 경천사지석탑과 함께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석탑이다. 팔각모양의 2단 기단 위에 9층의 탑신을 올린 석탑이다. 1층 탑신에는 불상을 모신 감실을 두고 있으며, 2층부터 거의 같은 높이를 유지하고 있다. 석탑 앞에는 탑을 향해 오른쪽 무릎을 꿇고 탑에 공향을 하고 있는 보살상이 있다.
주불전인 적광전은 석가모니를 본존불로 모신 불전이다. 원래 이 곳에는 일곱부처를 모신 칠불전이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고 1969년에 현재의 규모로 적광전을 중건하였다. 원래 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불전의 이름이지만 이 곳 월정사는 석가모니를 모시고 있다. 이는 화엄종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적광전을 중건할 때 비로자나불을 같이 모신다는 의미로 적광전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상원사는 월정사와 함께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알려져 있으며 성덕왕이 705년에 절을 크게 중창하면서 ‘진여원(眞如院)’이라 하였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문수보살상을 모시고 있는 사찰로, 세조가 이곳에서 문수보살을 만났으며 병을 나았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문화재로 신라 성덕왕 24년에 만든 높이 1.67 m, 지름 91 cm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국보 제36호)이 있으며, 세조가 직접 보았다고 하는 문수동자의 모습을 조각한 문수동자상과 문수보살상, 상원사를 중창하기 위해 세조가 쓴 친필어첩인 중창권선문(국보292호)이 있다.
주불전인 문수전(文殊殿)은 세조가 직접 친견했다는 문수보살을 모시고 있다. 내부에는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221호)와 목조문수보살좌상(보물1811호)가 모셔져 있다. 궁궐 정전 건물처럼 ‘-’형 건물로 지어진 사찰의 주불전과는 달리 누마루가 있는 ‘ㄱ’자형 건물을 하고 있다. 왕실과 관련된 원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상원사 동종(국보36호)은 현존하는 한국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종으로 통일신라 성덕왕24년(725)에 만들어졌다. 음통이 있는 종뉴(鐘紐), 상.하대, 유곽과 비천상, 당좌 등 한국종의 특징들을 잘 갖추고 있는 걸작이다. 원래 안동지역에 있던 것으로 세조대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사리탑 신앙
사리탑에 대한 신앙이 밀교와 만나게 되는 것은 성덕왕 때이다. 성덕왕은 신문왕과 효소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황복사에 삼층석탑을 세웠는데 사리와 함께 <무구정광다라니경>을 같이 봉안하였다. <무구정광다라니경>은 다라니의 공덕덕을 교설한 잡밀계통의 불경으로 중국 당나라에서 번역되어 신라에 전래되었다. 이후 신라에서는 탑속에 이 경전이 봉안되었는데 불국사 석가탑을 수리하면서도 봉안되었다. 동화사 비로암 석탑에는 사리장치와 힘꼐 금동사발불함이 봉안되었는데 밀교의 만다라사상이 사리탑신앙과 융합된 형태이다. 이후 많은 석탑에는 사리장치와 함께 <무구정광다리니경>이 같이 봉안되었다.
경주 황복사(皇福寺)
황복사는 의상이 출가한 사찰이며, 경문왕이 이곳에서 화장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절터에는 삼층석탑(국보 37호)와 일부 석조유물 외에는 옛 절터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삼층석탑에서 금제여래좌상(국보 79호)과 금제여래입상(국보 80호)을 비롯하여 탑을 조성한 내력을 기록한 사리함이 발견되었다. 사리함의 기록에 따르면 삼층석탑은 효소왕이 부왕인 신문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웠으며, 효소왕이 죽자 아우 성덕왕이 신문왕과 효소왕의 명복을 빌기위해 불상과 보물, 다라니경 등을 탑의 2층에 넣었다고 한다. 이는 황복사가 신라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사찰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구 동화사(桐華寺) 비로암(毘盧庵)
동화사 중심영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작은 암자로 주불전인 대적광전과 작은 요사채 건물로 되어 있으며 마당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삼층석탑(보물 247호)이 있다. 삼층석탑에서는 납석으로 만든 사리그릇(보물 741호)과 불상을 새긴 금동판이 발견되었다. 대적광전에는 삼층석탑과 같이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석조비로자나여래좌상(보물 244호)이 남아 있다. 민애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비로암이 세워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
납석으로 만든 사리그릇(보물741호) 몸통에는 7자 38행을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신라 민애왕의 행적을 꼼꼼하게 적어 놓고 있다. 사리그릇 표면에는 통일신라말 왕위쟁탈 과정에서 죽은 민애왕을 위해 조성했다는 기록이 글자로 남아 있다. 사리함에는 밀교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사방불이 표현되어 있다.
시안 대흥선사(大興善寺), 당나라 밀종(密宗)의 중심 사찰
대흥선사(大興善寺)는 서진(西晉) 때(266년) 준선사(遵善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며 당나라 때 인도 승려 선무외(善無畏, 637~735년), 금강지(金剛智, 671–741년), 불공(不空, 705~774년)이 인도에서 밀교들 들여와 제자를 양성하며 많은 밀교경전을 번역하였다. 당나라 불교 6대 종파 중 밀종(密宗)의 총본산으로 여겨지며 많은 불경이 번역되어 대자은사, 천복사와 함께 당나라 장안의 삼대역경장(三大譯經場)으로 불렸다. 신라 승려 혜통(惠通)은 선무외에게 밀교를 배운 후 귀국하여 진언종을 일으켰으며, 일본 승려 구카이(空海)는 인근 청룡사에서 혜과로부터 밀교를 배운후 일본 진언종을 일으켰다. 왕오천축국전의 저자 혜초(慧超, 704~787년)는 당나라 장안에 금강지에서 밀교를 배웠으며 불경번역에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오늘날 대흥선사는 명나라 때 중건된 사찰을 복원한 것이다. 가람배치는 산문, 천왕전, 대웅보전, 지장전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사찰 뒷편에는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불경을 번역했던 옛 역경원 건물 형태를 계승하고 있다.
천왕전을 지나면 대웅보전이 중심영역으로 들어선다. 양쪽에는 구고지장전(救苦地藏殿), 평안지장전(平安地藏殿)이 있으며 다음으로는 종루(鐘樓)와 고루(鼓樓), 요사채들이 배치되어 있다. 대웅보전은 오방불(五方佛)을 모시고 있으며 뒷면의 관음보살, 선재동자, 용녀가 모셔져 있다.
대웅보전 뒷편은 노천지장전(露天地藏殿)을 중심으로 관음전, 문수전, 보현전이 배치되어 있고 중앙에는 밀교의 대표적인 신앙대상인 대흑천(大黑天), 애염명왕(愛染明王), 대위덕명왕(大威德明王), 마리지천(摩利支天)을 모신 불전이 자리잡고 있다. 대흥선사를 방문한 신도들이 기도를 올리는 공간으로 현대 불교에서 대흥선사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대흥선사를 중수하면서 세웠던 비석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관음전 뒷편으로는 승려들이 수행하는 요사채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데, 밀교 경전을 번역했던 옛 역경원(譯經院)을 연상시키는 공간이다. 사찰 뒷편에는 전탑형식의 사리탑이 있다. 마당에는 노송이 10그루 이상 있으며 명나라 떄 심어진 등나무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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