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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산성_읍성)

청주 상당산성, 동장대와 진동문에서 공남문까지

younghwan 2013. 1. 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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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상당산성은 충청병영이 있었던 청주성 동쪽 상당산을 중심으로 쌓은 둘레 4.1km의 비교적 큰 규모의 산성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친 이후 내륙 지방 거점에 대한 방어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서해안과 가까운 서산 해미읍성에 있던 충청병영을 청주로 옮기면서 대대적으로 보수한 산성으로 남한산성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 산성이다. 상당산성에는 약 3,500명의 병력과 승군이 배속되었으며 성내에는 병마우후가 근무하는 관아와 마을, 승군들이 머무는 사찰 등이 설치되었다.

 청주의 상당산성은 중부내륙 지방의 중심지인 청주서쪽 상당산에 자리잡고 있다. 상당산성의 서쪽은 매우 가파르고 산성 아래는 평야지대를 이루는 반면에 동쪽은 완만하며 계곡을 이루고 있다. 산성내 동쪽으로 흐르는 계곡 주변에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예전에는 관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상당산성내에는 관아건물이 남아 있지 않고 서울근교의 남한산성과 비슷하게 식당으로 가득차있는 마을이 있다.

 산성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동남문에서 진동문 사이는 계곡을 이루고 있으며, 계곡을 막아서 만든 산성내 식수를 공급하던 작은 저수지가 있다. 지금은 산성내 마을로 연결되는 교통로는 계곡을 따라서 만든 도로가 있으며, 그 양쪽에 낮은 언덕이 있어서 계곡을 통해서 공격하는 적을 방어하기 쉬운 지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산성내에는 서쪽 봉우리와 동진문 남쪽 언덕에 2개의 장대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그 중 동장대가 있던 곳에는 최근에 복원한 정자인 보화정이 있다. 현재의 저수는 일제강점기에 홍수로 없어진 것을 1943년에 둑을 쌓은 것이라고 한다.

상당산 계곡을 둘러 돌로 쌓아 만든 산성으로 백제 때 부터 이미 이곳에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곳이다. 『삼국사기』에는 통일신라 초기에 김유신의 셋째 아들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쌓여진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상당이란 이름은 백제 때 청주목을 상당현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지금의 성은 임진왜란 때에 일부 고쳤으며 숙종 42년(1716)에 돌성으로 다시 쌓은 것이다. 성벽은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비교적 잘 남아있으나 성벽 위에 낮게 쌓은 담(여장)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성 안에 5개의 연못과 3개의 사찰, 관청건물, 창고 등이 있었는데, 현재는 문과 치성이 남아있다.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 청주·청원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여 서쪽 방어를 위해 쌓여진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문화재청>



상당산성 진동문에서 동장대가 있던 나즈막한 언덕으로 올라가는 성벽길.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진동문에서 동북쪽 모서리에 있는 동암문까지 연결되는 성벽.


언덕에서 보면 남쪽 공남문이 있는 언덕까지 연결된 성벽이 보인다. 가운데에는 계곡이 흘러내려오고 중간쯤에 동장대가 설치되어 있다. 원래는 성벽으로 막혀 있었지만, 지금은 산성내 마을로 연결되는 도로가 있다.


언덕에서 동장대로 내려오는 성벽길


성벽 바깥쪽으로는 산성마을로 들어오는 도로와 논.밭들이 있다.


상당산성 동장대가 있던곳에 있는 정자인 보화정. 보화정은 숙종대에 상당산성을 크게 개축할 때 마지막으로 세운 건물로 영조 19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원래의 건물은 세월이 흐르면서 없어졌다가 최근인 1992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동장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산성마을. 대부분 7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남한산성과 비슷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동장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산성 내부. 큰 저수지를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원래는 관아건물을 중심으로 산성을 지키던 사람들이 거주하던 마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산성내부는 면적이 727,276㎡ 정도로 꽤 넓은 편이다. 산성내에는 관아와 승군들이 머무는 2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계곡 사이로는 마을로 들어오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마을로 들어오는 가장 편리한 길이지만, 방어를 위해서 성벽과 수문으로 막혀 있던 곳에 도로를 개설한 것으로 보인다.


동장장 아래 성벽


산성내 식수를 공급하던 저수지. 현재의 저수지는 일제강점기에 유실된 것을 복구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의 저수지는 현재의 것보다 작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저수지 북쪽편에 형성되어 있는 산성마을.


2008년 봄.


공남문이 있는 언덕으로 연결되는 성벽


저수지 둑길을 지나서 치성이 설치된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언덕에 설치된 치성. 정문인 공남문을 엄호하기 위한 방어시설로 여장이 설치되어 있고, 아마도 블랑기포를 설치할 수 있었던 곳으로 보인다.


공남문에서 본 치성


치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동장대와 산성마을


2008년 봄


공남문에서 서쪽으로 연결되는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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