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백담사 외에도 남한산성과 선생의 고향인 충남 홍성에 만해 선생의 기념관이 있는데 백담사 내에도 만해 한용운 선생을 기리는 기념관이 절 한편에 자리잡고 있다. 만해 선생께서 수행을 위해 오랫동안 백담사에 머물렀고 독립운동가, 시인으로서 만행선행의 업적이 매우 크지만 우리나라 불교 역사에서 차지하는 만해 한용운 선생의 발자취도 적지 않은 듯 하다. 불교의 혁신과 관련된 많은 업적과 노고가 있는 듯 하다.
백담사에 자리잡고 있는 만해기념관. 자그마한 건물에 만해 한용운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만해 한용운 선행의 흉상과 시비.
만해기념관 입구의 편액.
만해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만해 한용운 선생의 좌상. 꼭 인도의 간디를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한용운 선생 불교사상과 불교혁신운동
흔히 불교사회주의로 요약되는 그의 불교사상은 불교계에서 뿐만 아니라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우리 민족 현실 전반에 대한 혁명적 사상의 기반을 이루었다. 〈조선불교유신론〉은 그의 불교혁신론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 책이며, 당시 한국불교의 침체와 낙후성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개혁을 주장하는 가운데 불교사상이 진보주의·평등주의·구세주의의 입장에 서야 함을 역설했다. (→ 〈조선불교유신론〉)그는 불교가 미래의 인류문명에 적합한 교리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조선에서는 낙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염불당 등의 기존의 허례적인 의식들을 타파하고 산중에 있는 절이 도시로 나올 것, 승려들도 사취(詐取)와 동냥질을 그만두고 스스로 생산활동에 참여할 것, 승려의 취처(聚妻)를 허락할 것 등을 주장했다. 이러한 사원운영의 혁신을 주장하는 내용에서 불교의 대중화·민중화라는 기본사상이 도출되어 나온다. 그는 불교의 민중화를 위해 불교 교리와 제도, 불교 재산을 민중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청년불교를 제창하고 그 부흥을 위해 노력했고 〈불교대전〉 등 불교경전의 번역작업에 착수했으며, 〈불교교육 불교한문독본〉·〈정선강의 채근담 精選講義菜根譚〉을 펴내고 〈유심〉·〈불교〉 등의 잡지 간행에 힘쓰는 등 불교의 민중화를 위해 노력했다. <출처: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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