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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비색청자 7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고려청자의 걸작, 상형도자기

식품을 저장하거나 식생활에 사용되었던 그릇, 항아리, 잔, 병 등과 함께 사람이나 동물, 특정한 기물의 형상을 본떠서 만든 상형 토기, 도기, 도자기는 고대 이래로 인류가 만들었으며, 지금도 많은 걸작들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 이전까지 말탄사람 토기, 각배, 토우 등의 형태로 많은 상형토기들이 출토되어 있다. 이들 상형토기들은 생활용품이라기 보다는 종교적인 의미를 갖거나 예술적인 표현의 형태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전통은 통일신라시대를 지나고 한반도에서 도자기가 본격적으로 생산되었던 고려시대까지 이어진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인 고려청자 중에서도 인물이나 동물, 특정한 기물을 형상화한 많은 상형도자기들이 만들어졌는데, 예술적으로 조형미가 빼어난 수작들이 오늘날까지 많이 전해..

중앙박물관 2013.01.14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고려청자 걸작,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국보68호)와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국보116호)

고려청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9~10세기부터 개경 부근의 가마터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하다가 점차 한.중.일 해상무역로에 위치한 서남해안으로 그 생산지가 확산되었다. 고려청자의 절정기는 12~13세기로 당시 대표적인 청자생산지는 전남 강진과 전북부안이있다. 은은한 빛깔의 비색청자와 문양을 장식하는 상감기법은 고려청자만의 독특한 특징으로 그 조형미와 예술성을 고려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인정받고 있다. 오늘날 전해지는 고려청자 걸작품들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초기에 박물관이 만들어지면서 개경의 궁궐터나 무덤에서 출토되거나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수집되었기때문에 대표적인 걸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고, 일제강점기에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간송 전형필이 수집한 것들과 해방이..

중앙박물관 2013.01.13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예술과 기술의 조화

고려청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뛰어난 예술성과 도자기술을 자랑하는 문화재이다. 고려초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한 고려청자는 12~13세기에 그 절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많은 걸작들이 오늘날까지 전해내려오고 있다. 고려청자는 중국 송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개경 근처에서 처음 만들어 졌다. 초기 많이 사용되었던 차를 마시는 그릇인 완이나 술잔, 그릇, 술을 보관하는 병이나 매병, 화장품 등을 보관하는 용기인 합 등에서 중국과 비슷한 태를 보이면서도 고려청자 특유의 장식이나 빛깔 등을 보여준다. 절정기 고려청자 중에는 물가풍경무늬 등 회화적인 요소가 반영된 비슷한 형태의 도자기들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전문 화가가 도자기 제작에 연관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게 하고 있다. 고려시대 도자기는 주요 소비처인 궁궐과 귀족들이 ..

중앙박물관 2013.01.10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청자로 장식된 집

고려초 청자가 국내에서 제작하던 시기에는 차를 마시는 작은 그릇인 완을 비롯한 작은 그릇들이 주로 만들어졌으나 전성기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형태의 생활용구를 비롯하여 상형도자기들이 만들어졌다. 청자로 만든 생활도구 중에는 항아리를 비롯하여 각종 그릇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청자 의자나 향로, 베개 등 예술적 조형미가 풍부한 도자기들도 많이 만들어졌다. 청자는 또한 집을 장식하는 기와를 비롯하여 각종 건축부재로도 사용되기도 하였다. 청자기와 등은 고려시대에 사용되기는 했지만 아주 일반적으로 사용된 건축부재는 아니고 정자 같은 소규모 건축물 등을 장식하는데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강진 가마터에서 발견된 청자기와 등을 통해서 고려인들이 청자를 건축부재로 사용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청자기와는 조..

중앙박물관 2012.12.26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고려청자의 변화와 쇠퇴

12~13세기초까지 절정을 이루었던 고려의 청자 제작기술을 13세기 몽고의 침입으로 오랜 기간 전쟁을 치르면서 그 경제적 기반이 상당히 약화되었다. 도자기의 모양은 단순해지면서, 두께는 두꺼워졌고, 아름다운 비색 청자 유약은 녹갈색이나 황갈색을 띠게 되었고 화려한 상감무늬는 점차 단순해졌다. 특히 몽고와의 전쟁이 끝난후 일본과의 해상무역이 쇠퇴하고, 왜구의 침입으로 해안가에 있었던 전남 강진이나 전북 부안의 도자기 생산가마들이 폐쇄되고 장인들은 내륙으로 피난하면서 도자기의 생산지가 전국으로 확산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고려말기의 도자기 수준은 전성기에 비해서 퇴보하게 되었고, 이런 도자기의 품질을 관리하기 위해서 도자기의 한쪽 부분에 글자를 상감으로 새겨 넣게 되었다. 도자기에 새겨진 글자로는 궁궐 관청..

중앙박물관 2012.12.16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고려청자의 절정과 확산

도자기는 유약을 입혀 1,300도 정도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 것으로 세계 도자기 역사에 큰 의미를 갖는 것으로 중국 당나라에서 당삼채와 함께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한반도에서는 통일신라시대에 도자기 제품을 사용하기는 했으나, 실제로 생산된 것으로 고려초인 9세기말에서 10세기 초 중국 월주요의 영향을 받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개경부근에서 도자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2세기에는 도자기 무역로에 위치하고 있었던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을 중심으로 전국각지에 가마에서 청자가 만들어 졌다. 초기에는 간단한 형태를 차를 마시는 용기인 '완'이 많이 만들어졌지만, 기술의 발전함에 따라 매병, 병을 비롯하여 다양한 생활용품들이 청자로 만들어졌다. 장식기법 또한 음각.양각.철화.통화..

중앙박물관 2012.12.15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고려청자의 시작과 전개

비색청자로 불리는 고려 청자는 은은한 녹색을 띠는 도자기로 우리나라을 대표하는 문화재이자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다. 고려청자는 도자기 종주국인 송나라 사람들조차도 그 빛깔이 중국 청자보다 뛰어나다고 칭송하였다고 한다. 비색청자는 유약이 반투명하며 그릇표면에 금이 생기지 않고 광택이 은은한 것이 특징으로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전반에 절정기를 이루며 12세기에는 상감기법이 도입되어 그 빛깔과 함께 예술적 조형미까지 갖추게 되었다. 청자는 중국 당나라에서 당삼채와 함께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통일신라시대에는 당나라에서 수입한 도자기들이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당나라 말에서 오대에 이르는 혼란기에 중국에서 도자기를 만들던 기술자들이 한반도로 넘어오면서 월주요의 영향을 받은 도자기들이 고려초기부터 생산되기 ..

중앙박물관 201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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