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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_종묘

[서울 사직단(社稷壇)]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 제를 올리는 제단

younghwan 2010. 9. 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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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도성의 서쪽에 자라잡고 있는 사직단이다. 토지의 신에 제를 올리는 사단(社壇)은 동쪽, 곡식의 신에 제를 올리는 직단(稷壇)은 서쪽에 설치되어 있다. 사직단은 내부에 담장이 설치되어 있고 사방으로 신문(神門)이 설치되어 있으며, 내부는 삼도로 연결되어 있다. 사직의 국가를 의미하는 말고 동일시 될 정도로 중요하느 의미를 가지며 사직단은 국가의 구성요소 중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사직단은 유교 법도에 따라 장식이 없이 아주 소박하게 설치되어 있는 관계로 문화재와 같은 유형적인 유물을 많이 남기지 않고 있다.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 제사를 올리는 사직단입니다. 사직단은 특별한 장식물이나 화려한 조경 같은 것은 거의 없고 단순하게 제사를 올리는 제단,

사직단을 출입하는 정문. 삼문의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국왕이 이문을 통해서 출입을 했을 것으로 생각되며 내부는 삼도로 연결되어 있다.

사직단으로 들어가는 길인 삼도(三道).

삼도 중간에 있는 제물을 준비하는 장소로 생각되는 곳.

사직단 주위로 낮은 남장이 있고, 동.서.남.북 사방으로 신문(神門)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제를 올리는 사직단. 동쪽에는 토지의 신을 모시는 사단(社壇), 서쪽에는 곡식의 신을 모시는 직단(稷壇)이 설치되어 있다.

사직단은 외부와 내부에 담장이 둘러져 있고 사방으로 출입문이 있다. 동쪽으로 난 문이 정문역할을 하며 북쪽방향의 문과 동쪽방향의 문으로 삼도가 연결되어 있다. 북쪽의 출입문에서 본 사직단

사직단 담장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건물인 신실(神室)

사직단 동쪽편 출입문에서 본 모습



사적 제121호. 이곳에 단을 쌓고 제사를 지냈으므로 사직단이라고 한다. 보통 도성의 서쪽에 위치한다. 사단(社壇)은 동쪽, 직단(稷壇)을 서쪽에 설치한다. 국토와 오곡은 국가와 민생의 근본이 되므로 고대에는 국가와 민생의 안정을 기원하고 보호해주는 데 대한 보답의 의미에서 사직을 설치하고 제사를 지냈다. 따라서 사직은 왕실의 조상들을 제사 지내는 종묘와 함께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시되어, 국가를 가리키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사직단이 설치된 것은 삼국시대부터인 것으로 기록에서 확인되고 있다. 고려 시대에도 991년(성종 10)에 사직을 세웠는데, 1014년에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수축되었다. 조선 왕조가 들어선 1393년(태조 2)에는 한양 천도와 관련된 종묘·사직의 지형도를 만들었다. 그 이듬해에 사직의 터를 잡았는데, 경복궁 서쪽의 인달방(仁達坊)으로 정했다. 1395년 사직단의 축조공사가 시작되어 단의 설치가 완성된 이후 담장을 둘렀으며, 담장 안에는 신실(神室)과 신문(神門)을 세웠다. 1474년에 간행된 〈국조오례의〉에 의하면 사직단은 정4각형의 평면으로서 한 변의 길이는 2장 5척 즉 25척, 높이는 3척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단의 사방 중앙에는 3층의 섬돌이 설치되어 있으며, 사단과 직단 사이의 간격은 5척으로 되어 있다. <출처: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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