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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부활된 환구단은 원래 제천행사를 하는 곳으로 조선초 유교가 국가의 지배이념으로 자리잡으면서 없어졌던 것이라 한다. 중국 북경의 천단공원과 비슷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는 데, 그 규모나 내용면에서 부실한 면이 많아 보이는 유적이다.
구한말에 만들어진 것이라 역사적으로는 큰 의미를 찾기 힘들고, 그 원형도 일제에 의해서 훼손되어서 지금은 도심속에 숨어 있는 작은 정원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소공동 조선호텔에 부속된 시설이라고 오해하기 쉬운 유물로 구한말 조선의 국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환구단의 중심이 되는 건물인 황궁우. 팔각형에 3층 건물로 1899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우리나라 궁궐건물을 응용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황궁우를 오르는 계단과 1층.
황궁우 팔각 지붕
황궁우 출입문. 삼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구한말에 만들어져서 그런지 기존 궁궐의 출입문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공동 조선호텔과 연결되어 있어서, 호텔 정원처럼 보인다.
황궁우를 오르는 계단의 장식
황궁우 삼문에서 황궁우로 들어가는 길.
도심속 정원처럼 보이는 황궁우.
황궁우와 함께 남아 있는 석고.
황궁우 난간
환구단 옛 사진
환구단의 모델이 되었던 북경 천단공원. 규모나 화려함에서 너무 차이가 난다는 느낌이다. 구한말 조선의 국력이 어떠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북경 천단공원에 위치한 황궁우
환구단(圜丘壇)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우리나라의 제천행사는 농경문화의 형성과 함께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삼국시대부터는 국가적인 제천의례로 시행된 것으로 믿어진다. 고려 성종 2년(983) 정월에 처음 시행되어 설치와 폐지를 계속 되풀이하다가 조선초에 제천의례가 억제되자 폐지되었다. 세조 2년(1456)에는 일시적으로 제도화하여 1457년에 환구단을 설치하고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러나 세조 10년(1464)에 실시된 제사를 마지막으로 환구단에서의 제사는 중단되었다. 환구단이 다시 설치된 것은 고종 34년(1897) 조선이 대한제국이라는 황제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부터이다. 현재 환구단의 터에는 황궁우와 석고 3개가 남아있다. 황궁우는 1899년에 만들어진 3층의 8각 건물이며, 석고는 악기를 상징하는 듯한 모습으로 화려한 용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1913년 일제에 의해 환구단은 헐리고 그 터에는 지금의 조선호텔이 들어서게 되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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