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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춘원은 조선시대 궁궐 정원이었던 곳으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이곳에 국가에서 운영하는 병원인 대한의원을 세움으로써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으로 변한 곳이다. 지금은 함춘원 유적은 사도세자의 사당이 있었던 경모궁 건물터와 출입문인 함춘문만이 남아 있어 이 곳이 함춘원 터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넓은 궁궐 정원터였던 이 곳 함춘원지에 남아 있는 유일한 흔적인 함춘문. 삼문의 형태로된 사당 출입문으로 경모궁 신문이 정식 명칭인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본관 건물 뒷쪽편에 위치한 함춘원지. 대학건물들로 둘러져 있다.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경모궁 신문. 삼문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측면에서 본 경모궁 신문(함춘문)
사도세자 사당인 경모궁 건물터. 사도세자 위패가 종묘로 옮겨감에 따라 관리가 소흘해져서 건물이 그 기능을 잃었다가 한국전쟁때 불타버렸다고 한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경모궁 계단.
함춘원은 조선시대의 정원으로 지금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이 위치한 곳이다. 『동국여지비고』에는 창경궁의 동쪽, 경희궁 개양문의 남쪽 등에 있는 궁궐의 정원 이름이 함춘원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그중 그 입지나 규모로 보아 가장 대표적인 것은 창경궁 동쪽의 것이다. 함춘원은 성종 15년(1484)에 창경궁을 짓고, 풍수지리설에 의해 이곳에 나무를 심고 담장을 둘러 그곳에 관계없는 사람의 출입을 금하였던 것에서 시작되었으며, 성종 24년(1493)년에 정식으로 이름이 붙여져 창경궁에 딸린 정원이 되었다. 연산군 때에는 함춘원 밖의 백성들의 집을 없애고 확장하였으며, 군대를 배치하여 일반인의 통행을 금하고 대문을 만들었다. 그 후 중종은 백성들을 다시 돌아와 살게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덕빈의 시신을 임시로 묻는 등 점차 관리가 소홀해졌으며, 인조 때에는 함춘원의 절반을 태복사에 나눠주었다. 이후 140여년간 말을 기르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영조 40년(1764)에는 사도세자의 사당을 이곳으로 옮겨지었고, 정조가 즉위하자 이곳을 경모궁으로 불렀으며, 정조 9년(1785)에는 이 일대를 정비하였다. 광무 3년(1899)에 경모궁에 있던 장조 즉 사도세자의 위패를 종묘로 옮기면서 경모궁은 그 기능을 잃게 되었으며, 경모궁도 경모전으로 이름을 고쳤다. 광무 4년(1900)에는 경모궁 터에 6성조 즉 태조·세조·성종·숙종·영조·순조의 초상을 모시던 영희전을 옮겨 세웠다. 그 뒤 일제가 나라를 강점한 후 경모궁 일대에 경성제국대학이 세워지면서 원래의 모습을 대부분 잃어버렸으며, 한국전쟁으로 인해 옛 건물이 불타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함춘원은 조선 후기의 세련된 건물 중 하나이며, 현재 남아있는 유적은 함춘문 뿐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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