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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_종묘

서울 창경궁, 대비가 거처하던 궁궐

younghwan 2010. 9. 6.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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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경궁은 조선 세종때 태종이 거처하던 곳에서 유래하여 성종 때 대비들을 모시기 위해 본격적으로 조성된 궁궐이다. 그후 임진왜란때 경복궁, 창덕궁이 불타고 왕이 임시로 거처함에 따라 궁궐로서 본격적으로 기능을 했다고 한다. 주로 대비와 후궁들이 거처하던 곳으로 일제시대때 동물원, 식물원이 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창경궁은 대비가 거처하는 궁궐이라는 격식에 따라 궁궐중 유일하게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왕의 즉위식 등 행사도 많이 치렀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 창경궁 내부는 동물원, 식물원을 철거함에 따라 많은 공간이 공터와 같은 상태로 남아 있어 타 궁궐에 비해 넓어 보이기도 한다.


※ 창경궁 탐방
 1. 흥화문과 옥천교                 2. 명정문, 명정전 앞 마당, 품계석, 회랑   
 
3. 창경궁의 법전인 명정전         4. 숭문당, 함인정                   5. 경춘전, 환경전        
 6. 영춘헌, 집복헌          7. 통명전, 양화당
 8. 문정전                                9. 관천대            10. 함춘원지

창경궁의 출입문인 흥화문입니다. 궁궐의 정문중에 유일하게 동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흥화문을 들어서면 궁궐의 격식에 따라 개천이 흐르고 그위로 옥천교를 지나서 정전인 명정전을 갈 수 있습니다.

창경궁의 법전인 명정전을 들어가는 입구인 명정문입니다.


창경궁의 법전인 명정전입니다. 이 명정전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입니다. 명정전 앞 마당과 회랑의 크기는 꽤 큰 것 같습니다.

명정전 내부입니다.


명정전 뒤로는 왕이 독서나 국사를 논의하던 숭문당입니다.

왕이 손님을 접대하던 함인정입니다.

왕과 왕비가 거처하던 경춘전과 환경전입니다. 하지만 주로 세자와 세자비가 거처했다고 합니다.

대비가 거쳐했던 통명전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던 양화전입니다.

정조가 많이 기거했다던 영춘헌입니다. 뒤쪽으로는 사도세자가 태어났다는 집복헌이 있습니다. 집복헌 주위는 주로 후궁들이 거처했다고 합니다.

창경궁에서 창덕궁으로 가는 길입니다. 아마 창덕궁으로 갈려면 대비 처소인 통명전을 지나야 했던 모양입니다.

창경궁과 창덕궁의 위성사진(구글어스)입니다. 두개의 궁궐을 합쳐서 하나의 궁궐처럼 보입니다.


창경궁은 조선시대 궁궐로 태종이 거처하던 수강궁터에 지어진 건물이다. 성종 14년(1483)에 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를 위해 창경궁을 지었다. 처음 지을 당시의 건물은 명정전·문정전의 정전과 수령전·환경전·경춘전·인양전·통명전들의 침전이 있었으며, 양화당·여휘당·사성각 들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궁궐중에서는 유일하게 동쪽을 향해 지어졌다. 처음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다가 임진왜란 때에 경복궁·창덕궁과 함께 불에 탄 이후, 창덕궁과 같이 다시 지어져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숙종의 사랑을 받던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독살하려는 못된 행동을 저지르다가 처형을 당했는데, 당시 희빈은 주로 취선당에서 생활하였다. 또한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일을 저질렀는데, 세자가 갇힌 뒤주를 궁궐 안의 선인문 안뜰에 8일간이나 두었었다. 창경궁은 순종이 즉위한 후부터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09년 궁궐 안의 건물들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으며, 궁의 이름을 창경원으로 낮추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984년 궁궐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원래의 이름인 창경궁을 되찾게 되었고, 궐 안의 동물들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기면서 벚나무 역시 없애버렸다. 장조·정조·순조·헌종을 비롯한 많은 왕들이 태어난 궁으로, 광해군 때 다시 지어진 정문·정전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옆에 있는 창덕궁과 함께 조선시대 궁궐의 역사를 살피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유적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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