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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 유적_왕릉

창경궁 관천대(보물851호), 국왕이 직접 천문을 관측하던 관천대(觀天臺)

younghwan 2012. 9. 17.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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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경궁에 있는 관천대는 현대그룹 계동사옥 앞에 있는 관산감관천대와 함께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2개의 관천대 중의 하나로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조선 후기 숙종 14년(1688)에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천문관측 시설로 많지 않은 유적중의 하나이다. 관천대는 높이 3m로 화강암으로 만든 석대 위에 조선시대에 가장 정밀한 천문관측대인 소간의가 설치하여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였다고 한다. 관상감 관천대는 실무관리들이었던 서운관(관상감) 관원들이 천체를 관측하던 실무용인데 반해서, 창경궁 관천대는 국왕이 직접 천문을 관측하는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천문학을 제왕의 학문으로 여겨 매우 중시하였는데, 이는 해와 달의 움직임과 계절의 변화에 따른 시각과 절기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이 매우 중요했기때문이다. 이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별자리지도, 신라의 첨성대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유래는 상당이 오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천문현상을 관측하는 서운관(관상감)을 두었으며, 서운관 관리들은 천체의 주요 현상들을 매우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겨 놓고 있다.

관천대
1688년 축조된 창경궁 관천대(보물 851호)는 대 위에 소간의를 설치하여 천체를 관측하던 시설이다. 계단과 난간만으로 구성한 건축물로 간결하고 힘찬 조형미가 느껴진다. 일제 강점기에 다른 곳으로 옮겨졌던 것을 창경궁 정비사업 때 제자리로 옮겨왔다. 이보다 조금 북쪽에는 보루각 터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주던 자격루를 두었다. <출처:문화재청>


창경궁 궐내각사들이 있던 곳에 남아 있는 관천대. 일제강점기에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가 1980년대에 창경궁을 복원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놓았다.


창경궁 편전인 문정전 앞 궐내각사들이 있던 곳에 남아 있는 창경궁 관천대. 조선시대 천문학이 제왕의 학문으로 국왕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분야 중 하나였다는 것을 현재의 위치에서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신라의 천문관측대인 첨성대를 계승한 것으로 보이는 관천대는 첨성대에 비해서 단순한 외형을 하고 있으며, 높이 3m의 화강석으로 쌓은 대(臺) 위에 정밀한 천문관측기기인 소간의를 올려 놓고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했다고 한다.


관천대에 소간의를 올려 놓았던 자리


관천대 위에 올려 놓고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던 정밀한 천문관측기기인 소간의(복원품). 실제 유물은 아니고 세종실록에 근거하여 복원한 것이다.

소간의(小簡儀)
소간의는 천체의 위치를 관측하고, 낮과 밤의 시각을 측정할 수 있도록 만든 천체관측기기이다. 세종16년(1434년)에 이천, 정초, 정인지가 제작하여 경복궁 천추전과 서운관에 설치하였다. 소간의는 간의보다 크기가 작고 이동이 편리하도록 더욱 간편하게 만든 것으로 눈금이 새겨진 둥근 고리 모양의 환, 즉 사유환, 적도환, 백각환, 규형, 기둥과 밑받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적도좌표계와 지평좌표게로 변형하여 사용할 수 있는 다목적 천체관측기기로 해, 달, 오행성과 별의 위치, 고도와 방위를 측정할 수 있다. 소간의는 세종시대에 도특하게 창제한 세계 유일의 천체관측기기이나. 현존하는 유물이 없어 세종실록에 근거하여 복원하였다. <출처:문화재청>


관천대 계단


뒷쪽에서 본 관천대


삼국시대 신라의 천문관측대인 첨성대


2012년 창경궁 관천대


2008년 창경궁 관천대


조선시대 국왕 직속 관청들이 있었던 궐내각사터. 일제가 동물원을 조성하면서 건물들을 허물어 지금은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궐내각사터에 남아 있는 오래된 고목


2008년 궐내각사터




서울에는 현재 조선시대에 만든 2개의 관천대가 있다. 하나는 창경궁 안에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작 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옛 북부 관상감 자리인 전 휘문고등학교 교지에 있는 것인데, 두 관천대는 구조나 크기, 제작 방법이 거의 같다. 창경궁 안에 있는 이 천문 관측소는 『서운관지(書雲觀志)』에 의하면 조선 숙종 14년(1688)에 만들어졌다. 높이 3m, 가로 2.9, 세로 2.3m 정도의 화강암 석대(石臺) 위에 조선시대 기본적인 천체관측 기기의 하나인 간의를 설치하고 천체의 위치를 관측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간의는 없고 석대만 남아 있는데, 당시에는 관측소를 소간의대, 또는 첨성대라고도 불렀다. 관상감의 관원들은 이 관측대에서 하늘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끊임없이 관측하였다. 17세기의 천문 관측대로서는 비교적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귀중하며, 관상감에 세워졌던 조선 초기의 또 하나의 관천대와 함께 조선시대 천문대 양식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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