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서원_향교_사당

영주 소수서원, 최초의 서원 '백운동' 현판이 걸린 강학당

younghwan 2010. 9. 19. 21:10
반응형

 소수서원 강학당은 서원의 중요 기능인 학문을 논하는 강학 공간의 핵심 영역이다. 조선 중종때 주세붕 선생에 우리나라에 주자학을 도입한 안향 선생을 모신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을 세울때 강학공간으로 정의한 영역으로 '백운동'이라는 현판이 건물 입구에 걸려있고,  '소수서원' 편액이 강학당 내부에 높이 걸려 있다. 서원의 구조는 성균관 구조를 축소한 형태로 강학당은 성균관의 명륜당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소수서원 강학당은 정면4칸, 측면3칸의 건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규모가 큰 편에 속하는 건물이다.

소수서원 강학당 입구에는 '백운동(白雲洞)'이라는 주세붕 선생이 처음으로 지은 이 서원의 이름이 적힌 편액이 걸려 있다.

소수서원 강학당 내부에는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의 현판으로, 사액서원으로 될 당시 조선시대 명종이 이름을 지어 그것을 직접 쓴 것이다. 사액서원이란 임금이 이름을 지어 그 이름을 적은 현판과 그에 따른 서적·토지·노비 등을 나라에서 내려준 서원을 말한다. 소수서원은 조선 중종 38년(1543) 풍기군수 주세붕(1495∼1554)이 건립할 때는 백운동서원이었다. 후에 풍기군수가 된 이황이 명종 4년(1549) 12월에 서원의 운영을 위하여 경상감사 심통원을 통해 조정에 서원의 편액·토지·책·노비 등을 하사하도록 건의하여 이듬해 4월에 명종의 친필 액자를 하사받아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소수서원'이란 이름은 당시 대제학 신광한이 왕명을 받아 이미 무너진 교학(敎學)을 다시 이어 닦게 하라는 뜻으로 지은 것이다. 현재 소수서원 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 현판은 검은 바탕에 글씨는 돋을새김하여 금칠을 하고 테두리는 화려한 장식이 되어 있으며,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이 현판은 우리나라 서원의 효시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의 현판을 명종이 직접 써서 하사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출처:문화재청>

소수서원 강학당 툇마루

여러 방향에서 본 소수서원 강학당



강학당은 서원의 양대기능중 하나인 학문을 강론하던 장소로 장대석의 높은 기단을 쌓아 그 위에 자연석을 다듬은 초석을 놓았으며, 규모는 정면4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 겹처마로서 웅장하면서도 고색이 잘 간직되어 있으며, 사방 둘레에 너비 1m정도의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툇마루 가장자리는 높이 6.5㎝, 높이 8.5㎝의 턱을 두었고, 기단 네 모서리에 추녀를 받는 활주를 설치하였다. 강학당의 정면은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서원입구에서 바로 강학당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남쪽 기단에 계단을 설치하였다. 내부 대청의 북면에는 명종의 친필인 '소수서원(紹修書院)' 이란 편액이 높이 걸려있다. 정면 4칸 중 좌측 3칸은 마루이며, 우측 1칸에는 방을 2개 설치하였고,기단3면(정면, 우측, 좌측)에 계단을 설치하였으며, 굴뚝은 마루 밑에 조그마한 구멍을 뚫어 처리하였다. 기둥 윗몸에서 앙서 하나를 내어 기둥위에 놓인 주두와 결구시킨 초익공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가구는 오량으로 대들보를 앞뒤의 평주위에 걸고 이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를 받치고, 종보 위에 파련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