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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영산강 남쪽에서 영암 월출산까지의 넓은 평야지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 지역은 고대국가 마한의 중심지이고, 그 중심에 해발 100m도 되지 않는 낮은 야산에 자리잡고 있는 자미산성이 있다. 이 자미산성은 백제 테뫼식 산성으로 백제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산성의 역할을 해 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자미산성은 영산강 이남 하류지역을 관장하는 곳으로 마한시대부터 후백제 견훤과 고려 태조 왕건과의 투쟁, 삼별초 항쟁 등 다양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이 주변 지역은 반남 박씨의 본향이기도 하다. 물론 자미산성은 지금 이름만 산성이고, 성벽이나, 성문지 같은 유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는 상태로 산성이었다는 의미만 간직하고 있다.
백제 때 축조된 테뫼식 산성.
영산강 유역의 백제시대 대표적인 산성으로 지금은 성벽이 토석 혼축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해발 94.5m의 자미산은 구릉에 불과하나, 산정은 편평한 대지로 되어 있다. 산 이름 ‘자미’는 성을 뜻하는 우리말 ‘잣’과 산을 뜻하는 우리말 ‘뫼’의 합성어로서 ‘성이 있는 산’의 뜻이다.
성벽은 본래 안쪽으로 호를 파고 내탁식으로 만들었다고 여겨지며, 성문은 3개소의 단절부가 있으나 지표에 문의 유구는 남아 있지 않다. 성 안에는 건물터와 ‘용왕샘’이라 부르는 샘이 있으며, 백제토기편과 고려 및 조선시대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따라서 조선시대까지도 산성으로서 기능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전해오는 얘기로는 후백제 견훤(甄萱)과 고려 왕건(王建)이 접전을 벌였던 곳으로, 견훤은 이곳 자미산성에 성을 쌓고, 왕건은 약 4km 떨어진 영암 갈마산에 주둔하면서 싸워 견훤이 패하였다고 한다. 그 후 고려 때에는 삼별초의 군사가 주둔하였다고도 한다. <출처:문화원형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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