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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성흥산성은 해와 달이 뜨는 풍경이 아름다운 아름다운 장소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이 곳 성흥산성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부여)과 웅진(공주)을 지키는 군사전략상 아주 중요한 곳으로 부여 서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부여 수도인 사비성을 가로 지르는 백마강(금강) 하류쪽과 주변 논산지역의 넓은 평야를 굽어보고 있어 수도를 방어하는데 요충지이다. 성흥산성이 있는 임천면은 조선시대에는 임천군으로 현재 부여군에 속해 있던 부여현, 흥산현, 석성현보다 높은 지위의 군현으로 아마도 금강 수운을 관리하는 업무의 중요성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부여 성흥산성은 산정상을 돌과 흙으로 성벽을 빙둘러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남.서.북문터와 군창터, 우물터가 남아 있다고 한다. 산성의 규모는 아주 큰 편은 아니지만 적정한 수의 군사로 침입하는 적의 길목을 제압할 수 있는 요새과 같은 산성이다. 토성이 주를 이루는 백제계 성곽에서 이 곳 성흥산성을 돌과 흙을 섞어 쌓은 석성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성흥산성은 경사가 급한 계단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으며, 현재는 정상 바로 아래까지 자동차로 갈 수 있다.
성흥산성 남쪽 금강을 바라보는 망루와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점에 큰 고목이 우뚝 솟아 있다. 드라마 서동요에서 사랑나무로 등장했던 나무라고 하며 이 나무를 배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풍경사진을 찍는 곳이기도 하다.
성흥산성에서 내려다 본 금강(백마강)과 주변의 풍경. 산성은 산의 높이는 높지 않지만 주위가 훤히 뚫린 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경치를 감상하기에 아주 좋다.
성흥산성 남문지
성흥산성 성벽. 성벽을 쌓은 돌을 색깔을 보면 원래부터 있던 것도 있고, 많은 부분은 최근에 새로 쌓았음을 알 수 있다.
성흥산성 정상부로 오르는 길. 이 곳 성흥산성 내에는 고려초 유명한 맹장인 유금필 장군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최근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충혼사. 백제가 멸망할때 나.당 연합군에 전사한 무명의 병사들을 위한 사당이라고 있다.
성흥산성은 백제의 수도였던 웅진성과 사비성을 지키기 위하여 금강 하류 부근에 쌓은 석성(石城)이다. 산 정상에서는 강경읍을 비롯한 금강 하류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며, 백제 동성왕 23년(501)에 위사좌평 백가(苩加)가 쌓았다고 전하는데, 당시 이곳이 가림군이었으므로 가림성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성을 쌓은 백가는 동성왕이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것에 앙심을 품고 동성왕을 살해하고 난을 일으켰으나 무녕왕이 왕위에 올라 난을 평정하고 백가를 죽였다고 전한다. 높은 관리인 위사좌평으로 하여금 성을 지키도록 하였다는 사실은 이 성의 전략적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성의 형태는 산꼭대기를 빙둘러 쌓은 테뫼식으로, 돌과 흙을 함께 사용하여 성벽을 쌓았다. 성 안에는 남·서·북문터와 군창터, 우물터 3곳과 돌로 쌓았던 방어시설인 보루가 남아있다. 또한, 백제 부흥운동군의 거점지이기도 한 이곳에는 고려 전기의 장수 유금필이 이곳에 들러 빈민구제를 하였다고 하여 해마다 제사드리는 사당이 있다. 이 성은 백제 때 쌓은 성곽 가운데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성이고, 옛 지명을 알 수 있는 유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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