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당포성은 연천과 파주 사이를 가르면서 흐르는 임진강변에 있는 고구려 성 중의 하나이다. 4~5세기 무렵 고구려가 남하함에 따라 백제와의 전선이 형성되었으며, 그후 신라 진흥왕이 한강을 장악하면서 자연스럽게 신라와의 국경선이 되었던 지역이다. 임진강을 따라서 북단에는 호로고루, 당포성, 은대리성 등 고구려의 요새들이 발굴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백제의 육계토성, 오두산성, 신라의 칠중성 등이 자리잡고 있다. 수백년동안 고구려와 백제 또는 신라와의 접전이 일어났던 국경지대 역할을 했으며, 지금도 남북의 휴전선이 이 임진강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 당포성을 보면 산성축조에 있어서 고구려인의 뛰어난 점을 느낄 수 있는데, 고구려 산성을 보면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에 소수의 인원으로 방어할 수 있는 산성을 구축하고 있으며, 그 축성법에 있어서 많은 노력이 들지 않도록 주위에서 볼수 있는 크지 않은 자연석과 토성축조기술을 혼합하여 호율적으로 성곽을 구축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이 곳 당포성을 보면 대표적인 고구려산성이 집안의 환도산성과 비슷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연천 당포성은 임진강과 작은 소하천이 만나는 강북쪽 절벽위에 세워진 전형적인 고구려성으로 절벽의 천혜의 요새를 형성해 주고 있다.
연천 당포성 동측성벽. 연천 당포성은 삼면이 절벽으로 되어 있어 사람의 출입이 힘들게 되어 있으며, 동쪽편만이 언덕길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다. 그래서 당포성은 동쪽에 석축과 토축을 혼합한 성벽을 쌓아 놓고 있다.
연천 당포성 동쪽 성벽은 당포성 내에서도 제일 높은 곳을 형성하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망루 역할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당포성 동쪽 성벽에는 지금도 우리 군에서 진지를 쌓아두고 있다.
당포성의 인공적으로 쌓은 동측성벽은 길이 200m, 높이 6~7m, 폭 31m 규모로 석축성벽이다. 성의 내부는 진흙과 막깍은 현무암을 섞어 쌓고 그 외부에 잘 깍은 현무암을 기대어 쌓아 석성과 토성의 장점을 잘 조합한 과학적인 축성법이 사용되었다. 성의 외부에는 성돌으 흘러내림과 외부의 충격에서 성벽을 보호하기 위하여 보축벽을 3~4단에 걸쳐 쌓았으며 성벽 앞에 폭 6m, 깊이 3m 정도으 깊은 도랑을 파서 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동측성벽의 외면에는 석축성벽을 따라 일정간격으로 수직의 홈이 파여 있고 홈과 맞물려 확돌이 연결되어 있는데 투석기와 같은 수성용 무기가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는 중국 집안의 환도산성, 패왕조산성 등 여러 고구려 산성들에서 보이는 것으로 고구려축성술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출처:연천군청>
당포성의 북벽은 임진강에 합류하는 소하천의 침식작용으로 높은 수직절벽이 형성된 곳이다. 성아네 우물이 없는 점으로 보아 물의 공급과 군사의 이동을 위한 교통로가 있다.
목책으로 둘러놓고 있는 당포성 내부. 고구려 산성이나 요새의 특징으로 내부는 크게 넓지 않고 방어를 위한 소수의 정예병력만이 이 곳에 주둔한 것으로 보인다. 넓은 만주지역을 장악하고 유목민들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한 고구려인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고구려의 남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4세기 말부터 연천지역은 고구려와 백제의 주요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으며 475년 장수왕이 백제의 수도 한성을 점령할 무렵에는 연천지역은 고구려의 세력권에 완전히 포함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6세기 중반 이후 백제와 신라의 연합군에 밀려 고구려가 한강지역에서 패퇴하면서 임진.한탄강을 중심으로 고구려의 방어선이 구축되었고 연천지역은 삼국의 치열한 각축장이 되었다. 이때부터 고구려의 남진시기에 주요 요충지에 목책 혹은 낮은 토루들로 구축했던 진지들이 높고 견고한 성들로 축조되기 시작하였다. <출처:연천군청>
연천군과 파주군 사이를 흐르는 임진강. 다른 강들과는 달리 오랜 침식으로 협곡을 이루고 있어 건너기가 쉽지가 않다.
연천군을 동에서 서로 관통해 흐르는 임진강과 한탄강 유역은 철원.평강 일대에서 화산이 폭발하여 옛 한탄강을 따라 용암이 흘러 내리면서 식어 만들어진 용암지대이다. 용암 분출이후 새로운 강줄기가 형성되면서 오랜 기간 동안의 침식작용으로 오늘날 보는 것과 같이 임진.한탄강을 따라 높이 15~20m 이상의 수직 현무암 주상절리가 병풍처럼 발달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임진.한탄강을 건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대규모의 군대가 진군하면서 강을 건너기란 더욱 힘들었다. 간혹 임진.한탄강과 소하천이 합류하는 지점은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강으로 내려가 강을 건널 수 있는 지형이 만들어 지기도 하였는데 수심이 낮아 배를 타지 않고 강을 건널 수 있는 얕은 여울목이 형성된 곳은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가 되었다. 이런 곳에는 어김없이 고대의 군사기지가 발견되고 있다. <출처:연천군청>
당포성 앞 임진강을 건너는 다리. 지금도 파주와 연천을 연결해 주는 다리는 경순왕릉 인근의 호로고루, 전곡리 선사유적지 부근은 은대리성, 그리고 당포성이 있는 이 곳에 다리가 놓여 있다. 그 정도로 전략적 중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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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포성은 임진강과 소하천이 현무암대지를 침식하면서 합류하는 삼각형 모양의 현무암 대지상위에 조성된 평지성으로 남쪽과 북쪽은 높이 15m 이상의 현무암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외부로부터 적의 침입이 쉽지 않고 접근이 가능한 동쪽방향에는 높고 견고한 석축성벽을 쌓아 천혜의 요새로 구축한 고구려성이다. 당포성이 관장하는 마전지역의 당개나루는 과거 양주와 파주에서 개성방면으로 통하는 주요 길목에 해당하며 평양, 개성 방면에서 서쪽의 장단을 거처 동북쪽으로 우회하여 양주로 진출하는 주요 통로였다. 대규모의 군사이동은 호로구루나 육게토성 앞의 낮은 여울목이 자주 이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이 곳들은 강의 양쪽에 견고한 요새들이 자리 잡고 있어 통행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동쪽으로 우회하여 이동할 시 개성으로 진입할 수 있는 최단 거리 상에 당포성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출처:연천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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