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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산성_읍성)

충주 장미산성(忠州薔薇山城), 남한강이 굽어보이는 삼국시대 고구려 산성

younghwan 2010. 9. 2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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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간 분쟁이 많았던 지역인 충주 인근 남한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장미산성입니다. 고구려와 신라가 세력권의 표시로 만들어 놓은 중원고구려비와 중앙탑이 있는 곳에서 자동차로 남한강변을 따라서 하류로 10여분 내려오면 있는 남한강 서쪽편 장미산에 장미산성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장미산성 중앙인 장미산 정상에 올라서면 남한강 상류쪽 충주 일대가 한눈에 들어와서 이 장미산성이 당시 국방상의 중요한 요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장미산성 성벽의 일부는 온전하게 남아있고 많은 부분은 허물어져 있지만 산성 자체는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충주 남한강변 중원고구려비와 중앙탑이 있는 지역에서 남한강 하류쪽로 도로를 따라서 자동차로 10여분 내려오면 남한강 서쪽편에 있는 나지막한 장미산이 있는 삼국시대 산성이 있습니다. 삼국의 접경지역에 자리하고 있어 신라,백제,고구려가 모두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며 산성을 쌓는 방법 등으로 미루어 고구려가 쌓은 산성이라는 의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충주 장미산성의 중앙이라고 할 수 있는 장미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남한강 일대입니다. 남한강 상류쪽 주변이 시야에 잘들어 오는 것으로 보아 남쪽 지역을 제압하기 위한 산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벽이 무너진 것으로 보이는 성벽의 일부분입니다. 성을 쌓았던 돌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충주 장미선성 성벽 중 바깥쪽에 쌓은 돌이 떨어져 나간 부분의 성벽입니다.

충주 장미산성 성벽중에서 온전하게 남아 있는 부분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충주 장미산성의 성벽중 가장 완벽하게 성벽이 보존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후대에 보수해서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성을 쌓은 돌의 크기 등으로 보아서 고구려가 쌓은 성벽의 양식처럼 보입니다.

충주 장미산성 성벽 윗부분입니다. 장미산성은 특이하게 성벽위로 참호를 파 놓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최근에 만든 참호시설처럼 보이지만 원래부터 있던 시설이라고 합니다.

충주 장미산성의 참호입니다. 최근에 만든 배수시설로 착각하기 쉽게 생겼습니다.

충주 장미산성내에 있던 연못인 연지터라고 하는데 맞는지는???

충주 장미산성을 오르는 길입니다. 아래에 있는 봉학사에서부터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장미산 정상을 오를 수 있습니다.

충주 장미산성 정상에 있는 헬기장입니다.

입구인 '봉학사' 부근의 성벽이 훼손되었기때문에 복원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충주 장미산성 입구입니다. 입구인 봉학사까지 자동차로 올라올 수 있기때문에 장미산성은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장미산성을 찾아갈때는 별도의 표지판을 찾기 힘들고 산길이라 못올라 갈 것 같지만, '봉학사'라는 사찰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따라 올라가면 됩니다.

안내표지판




충주시 가금면에 있는 장미산의 능선을 따라 둘러 쌓은 둘레 약 2.9㎞의 삼국시대 산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14권에 보면 ‘하천 서쪽 28리에 옛 석성이 있다’라는 기록과 『대동지지』에 ‘장미산의 옛 성의 터가 남아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1992년 조사결과 성 안에서 발견된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들을 통해 백제·고구려·신라가 차례로 이 성을 점령, 경영하였음을 짐작하게 해준다.북쪽에 있는 절인 봉학사 지역 일부를 빼고는 성벽이 원래 모습대로 남아 있다. 성벽은 돌을 대강 다듬어 직사각형으로 쌓았는데, 서쪽과 서남쪽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북쪽 정상부분의 성벽을 따라 있는 좁고 긴 군사용 참호는 주변 성벽의 재료를 이용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남쪽의 대림산성과 강 건너편 탄금대의 토성, 충주산성과 서로를 보호하며 도왔을 것으로 보인다. 파주의 오두산성(사적 제351호)과 지형조건이 비슷해 성을 쌓은 시대나 배경 등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유적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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