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통일직후 전국의 지방조직을 주군현체제로 완성하였고, 지방 말단 행정조직으로 촌을 설치하였다. 신라의 지방에 대한 지배는 촌주의 협력아래 이루어졌으며 그들의 후에 지방 호족으로 성장하였다. 지방에서 출토되는 기와 등에는 많은 문작가 적혀 있으며, 상당히 수준 높은 문화를 누렸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천 신라비. 경남 사천지역에서 출토된 문화재로 대규모 불교행사와 관련된 비석이라고 한다.
이 비는 대규모 국가적 불교행사와 관련하여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앞뒤 양면에 글을 새겼는데, '天천'자는 중국 당나라 측천무후 시대에 만든 문자를 사용하였다. 산술이라는 글귀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8세기 후반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이 시기 신라의 중앙과 지방의 관계, 중국과의 교류를 알 수 있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사라와초 암기와, 충남 홍성에 출토된 유물
'마로관' 명 암기와, 전남 광양에서 출토된 유물
전국 각지에 글자가 적힌 기와가 출토되고 있다.
지방관리들의 관복을 위한 허리띠
벼루에 적힌 글자.
지방관이 사용하던 인장
벼루와 연적
열쇠, 향로
재갈
주머니 모양 발걸이
울릉도 지역 출토 토기
청동의 만든 병과 접시. 완도 청해진과 황해도 평산에서 출토된 유물임
문자와 지방
신라는 삼국통일 직후인 신문왕 5년 전국을 9주로 나누고 그 아래에 군과 현을 두는 주군현 체제를 완성했다. 또한 5개의 소경을 설치하여 지방 지배를 강화했으며, 말단 행정 구역으로 촌을 설치햇다. 촌에는 대략 10여가구 100여명이 살았다. 당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하천 주변이나 들판에서 벼농사와 밭농사를 지었으며, 소와 말을 키우거나 잣 호두 등을 재배했다. 촌에 대한 국가의 지배는 촌주의 협력 아래 이루어졌으며, 촌주 중 일부는 후삼국시대에 호족으로 성장해 새 시대의 주역이 되었다. 정비된 지방 제도를 바탕으로 행정력이 지방 곳곳에 미치게 되고 소경과 주치 등에 귀족들이 이주하면서 왕경 문화는 지방에 빠르게 전파되었다. 각지에서 출토되는 문자 자료는 당시 지방 문화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이로 보아 당시 지방에서 문자생활이 보편화되었으며 그 수준도 왕경에 버금갔음을 알 수 있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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