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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술정리는 창녕읍에서 가장 중심인 재래시장이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에 비화가야가 있었던 시기부터 지역 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으로 생각된다. 국보 34호로 지정된 술정리 동삼층석탑은 아마도 현재의 위치에 통일신라시대 이후로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없어졌지만 황룡사처럼 도심지에 있었던 사찰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이 석탑은 불국사 삼층석탑의 양식의 그대로 반영되어 있으며, 당시 이런 형태의 석탑이 보편화되던 시기, 석탑 제작 기술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만들어진 석탑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 예술적, 문화사적 가치가 높아서 국보로 선정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창녕읍 중심부 술정리에 위치한 창녕술정리동삼층석탑
이 삼층석탑은 이층의 기단부 위에 삼층의 탑신을 얹어놓고 있는 있는데 그 비율이나 조각수법이 뛰어나다.
삼층석탑 기단부. 기단에 기둥을 새겨놓고 있다. 탑이 글이나 조각 등의 장식은 남겨 놓고 있지 않다.
탑신의 지붕돌은 하늘로 약간 치켜 올라가는 모습으로 간결해 보인다.
여러 방향에서 본 술정리동삼층석탑.
탑이 세워져 있는 창녕지역은 삼국시대부터 신라의 영역에 속해 있던 곳이며, 진흥왕 때부터 신라의 정치·군사상의 요지가 되었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통일신라 석탑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기단에는 위·아래층 모두 각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탑신 역시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한 조각이 있다. 지붕돌은 수평을 이루던 처마가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라가 간결한 모습이며,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다. 1965년 탑을 해체, 복원할 당시 3층 몸돌에서 뚜껑달린 청동잔형사리용기 등의 유물들이 발견되었고, 바닥돌 주위에 돌림돌을 놓았던 구조도 밝혀졌다. 8세기 중엽인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탑으로, 위로 올라가면서 적당한 비율로 줄어드는 몸돌로 인해 충분한 안정감과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세부적인 수법도 정교하여 불국사 삼층석탑(국보 제21호)과 비길만한 기품이 있으며, 삼국시대부터 신라 영역에 속해있던 창녕의 지역적인 특성으로 볼 때, 경주 중심의 탑 건립 경향이 지방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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