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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합천 해인사 길상탑 (보물 1242호), 오대산사탑지

younghwan 2010. 3. 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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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1242호로 지정된 해인사 입구에 있는 크지 않은 3층석탑으로 길상탑이라 한다.
이 길상탑은 통일신라후기, 치열했던 왕위쟁탈전 속에 장보고가 죽었던 그 시기에 해인사를 지키기 위해 죽은 승려와 주민들을 위해서 세운 석탑이라하며 일반적인 석탑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는 석탑이다. 길상탑을 1960년대에 해체했을때 탑에 대한 기록을 새겨 놓은 최치원이 쓴 탑지를 비롯하여 오대산사탑지, 백성산사탑지가 함께 출토되었다고 한다.


해인사 일주문 아래에 있는 길상탑. 정식 명칭은 '해인사묘길상사탑'이라 한다.

이 탑에서 출토된 '오대산사탑지'. 이 탑지는 인근에 있는 오대산사탑지만 이 길상탑에서 함께 출토되었다고 한다.

해인사 절 입구의 일주문에서 남쪽으로 약 50m 지점에 서 있는 탑으로, 일반적인 절의 건물 배치와는 무관하게 길가에 세워져 있다. 2단의 기단(基壇)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구조로,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갖추고 있다. 바닥돌 위에 아래층 기단을 받고, 윗면에 얇은 괴임을 새긴 후 위층 기단을 얹었다. 위층 기단은 하나의 돌로 짜여져 다른 탑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모습이다. 탑신은 1층의 몸돌이 2·3층의 몸돌보다 크며,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각 층 모두 5단이다. 지붕돌의 처마는 반듯하다가 네 귀퉁이에서 뚜렷하게 치켜올려져 전체적으로 경쾌한 느낌을 준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네모난 받침돌만 남고 모두 없어진 상태이며, 받침돌 윗면에 쇠꼬챙이를 꽂았던 구멍이 뚫려 있다. 탑에서 나온 유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그 중 조그만 탑이 157개가 있으나, 소탑은 원래 99개, 77개를 두는 것이 원칙이므로 19개는 없어진 듯 하다. 탑에 대한 기록인 탑지(塔誌)는 4장인데, 통일신라 후기 대문장가인 최치원이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글에는 신라 진성여왕 8년(895) 통일신라 후기의 혼란 속에 절의 보물을 지키려다 희생된 스님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탑을 건립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전체적으로 단아하면서도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소탑(小塔)으로, 탑지의 기록은 당시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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