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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_현대 건축

명동성동 본당,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교회 건축물

younghwan 2010. 3. 29.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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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동성당 본당 건물은 1898년에 완공된 벽돌로 쌓은 교회 건축물로서 프랑스 선교사 코트스신부가 설계해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명동거리 중심부 제일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이 건물은 고층빌딩이 들어선 도심에서 아직도 이정표 역할을 할 정도로 눈에 띄는 건물이다. 고층건물이 없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로 돌아가 본다고 생각하면, 이 건물이 얼마나 인상적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붉은 벽돌로 쌓았는데 다양한 모양의 벽돌을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카톨릭의 총본산으로 이 성당이 생겨난 이후 오늘날까지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과 함께 해 왔던 성당이다. 건물의 형식은 중세에 성당건물에 많이 사용되었던 순수한 고딕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실제 건물규모에 비해서 그 위치적 특성과 건물 설계로 인해서 상당히 웅장하게 보인다. 건물은 우리나라 전통건물 배치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은 출입문과 첨탑이 북쪽을 향하고 있는데, 아마도 프랑스인 신부가 설계를 해서 사람들이 이동하는 동선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인파로 붐비는 명동거리를 지나서 언덕길을 올라오며서 보이는 명동성당. 정면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예수상이 있고, 전형적인 고딕양식의 명동성당 첨탑을 볼 수 있다.



명동성당 정면 아치형의 출입문. 첨탑이 주 출입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삼문을 이루고 있다.


명동성당 내부. 천정이 아주 높고, 건물 중간에 기둥이 있는 전형적인 고딕양식의 성당이다. 건물이 크지 않아서 그런지 유럽 도시들의 성당에 비해서 내부가 밝아 보인다.



명동성당의 첨탑. 원래 성당의 첨탑은 중세도시에서 망루역할과 시간을 알려주는 종루의 역할을 하던 시설로 계단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도록 설계되는 것이 보통이나 명동성당은 규모가 작은 건물로, 계단을 설치할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다. 그래도 시계를 설치하여 많은 사람들이 시계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은 아직도 가지고 있다.


뒤쪽에서 본 명동성당. 건물내부를 보면 정면 강단이 있는 곳이 상당히 밝았었는데, 유리창으로 자연 조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명동성당 지하로 들어가는 출입문. 명동성당 지하로 들어가는 출입문. 원래 성당 지하에는 순교자나 업적이 큰 사람의 유해를 안치둔다고 하며, 어린 시절에는 그래서 성당에 가면 무서운 느낌이 들었는데 아마도 이 곳이 그런 곳이 아닐까 생각된다. 명동성당 지하에는 병인박해때 순교자들을 안치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명동성당 옆면. 아치형 창문에 다양한 형태의 장식적 기능을 더했다.

 
명동성당 입구 언덕아래에서 올려다 본 명동성당의 모습

명동성당은 코스트(Coste) 신부가 설계하였고 파리선교회의 재정지원을 얻어 건립되었다. 본래 순교자 김범우의 집이 있던 곳으로, 블랑주교가 김 가밀로라는 한국인 명의로 사들였다. 그후 1887년 한국과 프랑스사이에 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1898년 완성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벽돌로 쌓은 교회이며, 순수한 고딕식 구조로 지어졌다. 평면은 십자형이며 본당의 높이는 23m, 탑의 높이는 45m이다. 고딕양식의 장식적 요소를 배제하면서 그대로 본떴고, 공간의 고딕적 느낌은 외부보다 내부에서 더 강하게 주어졌다. 건축에 사용한 벽돌은 우리 나라에서 만든 것으로, 그 모양이 20여종에 달할 뿐 아니라 색깔도 붉은것과 회색 2종류가 있다. 이들을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조화있고 아름다운 건물을 완성하였다. <출처:문화재청>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에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성당. 사적 제258호. 건물의 평면 길이 약 69m, 너비 28m, 높이 23m, 종탑 높이 47m. 건축면적 약 1,500㎡. 종현성당(鐘峴聖堂)·명동천주교당이라고도 하며 1892년(고종 29)에 착공해 1898년에 준공했다. 명동성당 자리는 1784년(정조 8) 역관 김범우(金範禹)의 집으로 이승훈(李承熏), 정약전(丁若銓)의 3형제, 권일신(權日身) 형제 등이 모여 종교집회를 가짐으로써 조선천주교회가 창설된 곳이기도 하다. 설계와 공사감독은 프랑스인 신부 코스트(Coste 高宜善)가 담당하고, 중국인 벽돌공·미장이·목수 등이 동원되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자들의 유해를 지하묘지에 안장했으며, 1945년 이름을 종현성당에서 명동대성당으로 바꾸었다. 1939년 문화관이 준공되고, 1947년 가톨릭출판사를 설립해 각종 출판물을 간행하고 있다. 교회창설 200주년을 맞아 1981년에 스테인드 글라스, 지붕동판교체 등 대대적인 수리공사에 착수해 1984년 마무리했다. 건물의 평면은 라틴 십자형 삼랑식(三廊式)이고, 고딕 양식의 벽돌건물이다.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며 구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출처: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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