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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동 옛 대법원청사였던 서울시립미술관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배재학당터에 남아 있는 당시의 건물이다. 이화학당과 더불어 1885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 중 하나로 미국인 선교사인 아펜젤러가 세웠다고 한다. 정동의 건물배치를 서대문인 돈의문터에서 시작해서 남대문까지는 창덕여중, 이화학당, 정동교회, 배재학당, 서울시립미술관, 상공회의소, 삼성그룹빌딩군 등 공공기관 성격의 건물들이 옛 한양도성 성곽을 허문 자리에 들어서 있다. 아마도 구한말 이 곳 성곽을 허물고 외국인들에게 부지를 내어 준 것으로 보인다. 배재학당의 후신인 배재고등학교는 지금은 강동구로 이전하고 지금은 재단관련 빌딩들이 들어서 있다.
배재학당 건물 중 현재까지 남아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배재학당 동관. 건물상태가 아주 깨끗하게 남아 있다. 이 건물은 1916년에 건립된 건물이라고 한다.
배재학당의 설립자인 아펜젤러는 미국 감리교 목사로 당시에 유행하던 미국 도시형 주택 및 공공건물의 형태로 지었다. 천장 아래에 다라방 형태의 공간이 있고, 지하 공간도 교실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 동부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건물형태이다.
배재학당 동관 출입문. 당시 일본인들이 세운 근대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는 출입문은 없고 계단을 통해서 걸어 올라가게 되어 있다.
여러방향에서 본 배재학당 동관
배재학당에 있었던 오래된 고목들
옛 배재고등학교가 있었던 자리에는 배재정동빌딩이 들어서 있다.
옛 배재고등학교 부지를 활용한 것으로 보이는 배재공원
옛 배재학당의 교실로 사용되었던 건물로서, 앞쪽의 현관과 양옆 출입구의 돌구조 현관이 잘 보존되어 있다. 또한 건물의 구조와 모습, 건물에 사용된 벽돌 구조가 매우 우수하다. 1916년에 건립된 이 건물은 처음 지어질 때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으며, 건물의 형태도 매우 우수하여 한국근대건축의 중요한 지표가 된다. <출처:문화재청>
교훈은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欲爲大者 當爲人役)이며, 서울특별시 강동구 고덕동 313번지에 있다. 법인명은 배재학당이다. 1885년 8월 미국 북감리교회 선교사 H. G. 아펜젤러가 설립했으며, 1886년 고종황제가 배재학당(培材學堂)이란 교명을 하사했다. 1909년 4월 배재고등학당으로 인가받았고 1916년 배재고등보통학교(5년제)를 설립하여 병설 운영했다. 1925년 배재학당이라는 교명을 폐지하고, 미군정하에서 다시 개교했다(1945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휴교하였다가 전쟁중 부산 초량동에서 재개교했다. 1951년 교육법 개정으로 배재중학교와 배재고등학교로 분리 개편되었고, 1953년 서울 본교로 복교했다. 1985년 창립 100주년 기념식을 올리고 기념탑을 제막했다. '21세기를 선도하는 배재인'을 배재비전으로 내걸고 있다. 배재학당(培材學堂)은 1885년 8월 3일, 미국의 감리교 목사인 아펜젤러가 서울에 세운 중등 교육 기관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학교였다. 그 명맥은, 배재중·고등학교 및 배재대학교로 이어졌다. <출처: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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