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낙안군 관아 소재지에 쌓은 읍성으로 조선초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전국의 여러 읍성들 중 그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교통과 행정 중심지였던 낙안군이 일제강점기 경전선 철도개설로 철도역이 개설된 벌교읍으로 그 기능이 급격하게 이전됨으로서 원래 있었던 읍성마을 근대화 과정에 소외되어 옛모습을 오늘날까지 보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읍성내에는 약 90여호의 가옥에 실제 주민들이 옛 초가집들을 보존하면서 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낙안읍성 주변 도로가 동문 주변으로 개설되어 지금은 읍성의 정문처럼 사용하고 있는 동문 주변은 낙안읍성을 찾는 사람들이 처음 보게 되는 시골마을의 모습일 것이다. 읍성 동문 앞에 서면 오른쪽으로 식당 등으로 이용되는 최근에 보수한 초가집들이 보이고 성벽 바깥쪽에는 옛날 가난했던 주민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작은 초가집을 볼 수 있다. 동문을 들어서면 관아가 있는 낙안읍성 중심부와 서문까지는 큰 길이 연결되어 있으며, 관광객과 주민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다 보니 일제강점기 이후 상점으로 개조한 것으로 보이는 초가집들이 관아 앞 저자거리까지 연결되어 있다. 도로 남쪽편으로는 읍성에서 터를 잡고 살고 있는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초가집들이 들어서 있으며, 조선시대 서민들이 살았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낙안읍성에는 지금도 91세대(2001년 기준)가 실제 생활하고 있는 살아 숨쉬는 민속 고유의 전통마을로 서, 민속학술자료는 물론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동무을 비롯 서, 남문을 통해 성 안에 들어서면 사극 촬영장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들며(사극 용의 눈물, 태조왕건 등 촬영장소) 용인, 제주민속마을과 같은 전시용이나 안동 하회마을과 같이 양반마을도 아닌, 그저 대다수의 우리 서민들이 살아왔던 옛 그대로의 모습이기에 조상들의 체취가 물씬 풍겨 친근한 정감이 넘친다. 남부 지방의 독특한 주거양식인 툇마루와 부엌, 토방, 지붕, 섬돌 위의 장독, 이웃과 이웃을 잇는 돌담은 모나지도, 높지도 않고, 담장이와 호박넝쿨이 어우러져 술래잡기 하며뛰놀던 어린시절 마음의 고향을 연상케 한다. <출처:순천시청>
낙안읍성 동문앞 초가집들. 원래 주민들이 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부분 최근에 크게 보수한 것으로 보이며, 민박집들과 식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읍성 동문을 들어서면 낙안군 관아가 있던 읍성중심부를 지나 서문으로 연결되는 큰 도로가 있다. 도로 오른쪽편에는 주로 관아 건물들이 들어서 있으며, 민가들은 도로 왼쪽편에 위치하고 있다.
낙안읍성 동문에서 내려다 본 동문 앞 큰 도로와 주면 민가들
읍성 남쪽편에 들어서 있는 크고 작은 초가집들
성벽 바깥쪽에 성벽을 담으로 삼고 사는 작은 초가집. 작은 창고 건물을 두고 있는 마당도 아주 좁은 초가집이다. 원래는 텃밭도 없었고 비슷한 초가집들이 연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성벽 바깥쪽에 있는 가난한 서민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초가집. 앞면 2칸짜리의 작은 초가집으로 내부는 '田'형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벽 안쪽에 있는 초가집. 앞면 4칸의 '-'자집으로 여러동 부속채를 두고 있는데 최근에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가옥의 규모로 볼 때 읍성내에서 중간정도의 경제력과 지위를 가진 사람이 살았던 집으로 생각된다.
동문 안쪽에서 북쪽편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큰길 오른편으로는 성벽 안쪽에 여러채의 가옥들이 있다.
동문에서 서문으로 연결되는 큰 길 주변은 주민들과 관광객의 왕래가 많은 길로 최근에 상점으로 개조된 가옥들을 볼 수 있다.
이 가옥들은 아마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도시의 상점건물처럼 초가를 지은 것으로 생각된다. 전통적인 초가집 구조와는 약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관아가 있는 읍성 중심부로 들어서면 장터로 사용되는 공터와 성점들이 들어서 있는 저자거리가 형성되어 있는데, 부근 주택도 식당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는 듯 하다.
낙안읍성 관아의 중심건물인 객사 맞은편에는 저자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공터와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관광객들을 위한 식당 안내
저자거리가 있는 관아 앞 큰 길.
남문으로 연결되는 큰길과 만나는 지점
식당들이 들어서 있는 저자거리. 이곳에 있는 노거수를 중심으로 원래부터 저자거리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저자거리에 있는 작은 상점
저자거리에 남아 있는 수령이 400년 이상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은행나무
은행나무 기둥.
관아에서 남문으로 연결되는 길
남문으로 가는 길 옆에 있는 작은 초가집. 앞면 4칸에 '-'자집을 하고 있는 서민층이 살았던 초가집이다.
이집은 앞면 5칸으로 '-'자형을 하고 있는 초가집으로 문앞에 툇마루를 달아내어 놓고 있다. 읍성내에서는 어느정도 경제력을 갖춘 집이라 할 수 있다.
남문 부근에 있는 이 집은 앞면 4칸짜리 건물 2동으로 구성되어 있고, 마당도 꽤 넓은 편이다. 읍성내에서는 경제력이 있었던 주민이 살던 가옥으로 보인다.
읍성 남쪽 옥사와 연못 주변에 있는 초가집. 마당이 넓고 앞면 4칸 규모의 '-'자집을 하고 있는 초가집이다. 읍성내에서는 중간 이상 계층이 살았던 가옥으로 보인다.
읍성 남쪽 연못에서 동문으로 연결되는 길. 크고 작은 민가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큰길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는 작은 길
큰길로 연결되는 골목길.
앞면 3칸에 토담으로 지붕을 받치고 있는 전형적인 서민층이 살았던 초가집이다.
동문 앞 큰길로 연결되는 골목길
동문 남쪽 성벽 안쪽에 있는 초가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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