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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_정원

안동 하회마을, 하동고택과 염행당

younghwan 2012. 11. 2.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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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하회마을은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마을로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을이다. 조선초기 풍산류씨가 정착한 이후 서애 류성룡을 비롯하여 많은 문신들과 학자들을 배출한 전통있는 마을로 이중환의 택리지에 영남 4대길지로 손꼽히는 마을이다. 하회마을은 옛모습이 남아 있는 전통마을이지만 실제로는 일반 농민들이 살았던 마을이라고 할 수는 없고 정부 고위관료들을 많이 배출하고 많은 농지와 노비를 소유했던 조선시대 지배계층인 양반계층을 대표하는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에는 보물로 지정된 충효당과 양진당을 비롯하여 가장 큰 규모의 저택인 북촌댁 등 풍산류씨 일가에서 성공한 후손들이 분가하여 지은 크고 작은 기와집들이 많이 남아 있고, 초가집들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상당부분은 규모가 크고, 양반지주계층이 살았던 집처럼 보이는 가옥들이 많다. 하회마을을 둘러보면서 먼저 입구에 있는 하회마을 보건소 부근에 위치한 하동고택부터 시작하여 동쪽 골목길을 따라서 마을끝에 위치한 충효당까지 차례로 둘러보았다.

하동고택, 이 집은 류교목(1810~1874)이 헌종 2년(1836)에 지었으며, 하회마을 안에서 동쪽에 자리하고 있어 '하동고택'이라 부르게 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남녀를 구별하는 유교윤리의 영향으로 여성들의 공간인 안채와 남성들의 공간인 사랑채를 구별하여 집을 짓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 집은 'ㄷ'자 모양의 안채와 서쪽으로 꺾여 나오게 지은 사랑채가 이어져 '弓'자 모양을 하고 있다. 따로 떨어진 대문간채가 본채와 달리 초가로 지어져 소박하고 정겨운 모습이다. <출처:안동시청>



마을입구 하회마을 보건소 동쪽편에 있는 하동고택은 예전에는 식당으로 운영했던 것 같은데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지금은 살림집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에 지어진 가옥으로 사랑채가 바깥쪽에 있고, 안채가 뒷편에 위치한 전형적인 안동지역의 'ㅁ'자형 구조를 하고 있는 저택이다. 문간채가 있는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이 있고, 그 옆에 사랑채 건물이 있다.


기와를 얹은 안채, 사랑채와는 달리 대문이 있는 문간채는 초가을 얹은 건물로 소박한 느낌을 준다. 문간채가 초가를 하고 있지만, 이 저택은 상당히 큰 규모의 저택이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저택에서는 안채와 사랑채를 제외한 부속 건물에는 초가를 많이 사용했다.


대문들들어서면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이 있는 문간채가 보이고, 안채는 폐쇄된 'ㅁ'자형 구조를 하고 있다. 중문 문틈사이로 안채 대청마루가 있는데, 보통 이집 안주인인 할머니들이 앉아서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 살펴보면서 하루를 보내는 곳이다.


이집 바깥주인이 독서를 하거나 손님을 맞으면서 하루를 보내는 사랑채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건물로 온돌방 2칸, 대청마루 1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가는 사람이 걸터 앉아서 주인과 환담을 나눌 수 있도록 앞쪽에 툇마루를 두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연결되어 있으며, 안채 뒷마당과 사랑채 마당을 구분하기 위하여 담장을 쌓아 놓고 있다.


안채 뒷편. 보통 안채 뒷마당에는 툇마루를 만들어서 여자들이 앉아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집에는 툇마루가 없다. 안채는는 앞면 5칸 정도로 보이며, 온돌방2칸과 대청마루 2칸, 부엌 1칸으로 되어 있는 것 같다.


안채 뒷마당 텃밭


하동고택에서 남쪽 충효당으로 들어가는 하회마을 중앙의 큰 길


하동고택에서 동쪽편으로 연결되는 골목길


골목길에서 볼 수 있는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문간채. 크지 않은 규모의 집으로 대문 바깥쪽에 툇마루가 있는 것으로 볼 때 문간채겸 사랑채 역할을 하는 방으로 보인다.


하회마을 동쪽편으로 연결되는 골목길


마을 동쪽편에 있는 한옥. 지금은 농가처럼 보이지만 'ㅁ'자형 기와를 얹은 한옥이다. 사랑채와 문간채가 없는 것으로 볼 때 큰 저택은 아니고 중간계층 농민이 살았던 집으로 보인다.


마을 동쪽편에 있는 마당이 꽤 넓은 한옥. 'ㅁ'자형 주택으로 안채와 사랑채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 저택이다. 마당이 넓은 것으로 볼 때 문간채나 부속채 등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마을 동쪽편에 있는 초가집. 최근에 보수한 것으로 보이는 집으로 농민계층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본채는 앞면 4칸 정도로 '-'자형 주택을 하고 있다. 사랑채역할을 하는 방주위에 툇마루를 달아내어 놓고 있다.


하회마을 동쪽끝 골목길. 마을너머로 꽤 넓은 농지가 펼쳐져 있다.

남촌 염행당, 염행당은 류치목(1771~1836)이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다. 처음에는 단촐하게 지었는데, 그의 증손자인 류영우(1850)가 1905년에 크게 확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1954년에 불이나서 안채, 사랑채와 후대에 지은 작은 사랑채가 소실되고 현재는 대문채와 별당, 사당만이 남아 있다. 별당채와 사당 사이의 흙돌담에 기와로 아름다운 무늬를 새겨 넣어 고아한 정취를 풍긴다. <출처:안동시청>


마을 동쪽편에서 다시 남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하회마을에서도 상당히 큰 규모를 하고 있는 저택인 남촌염행당이 나타난다. 19세기초에 처음 지어진 이 집은 20세기초에 크게 확장되었는데 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문간채가 오래된 느낌을 준다.


남촌 염행당 대문


남촌 염행당은 원래 크지 않은 집이었다고 하는데 20세기초에 크게 확장되어 오늘과 같은 형태를 갖추었다고 한다. 안채와 사랑채로 이루어진 'ㅁ'자형 본채, 작은 별당, 문간채,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950년대에 본채인 안채와 사랑채가 불타버려서 최근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 창문이 없는 것으로 볼 때 문간채는 외양간이나 광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는 앞면 7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큰 규모이다. 오른쪽 끝은 앞으로 돌출되어 있지는 않지만 대청마루보다 높게 마루를 설치한 누마루 형태를 하고 있다.


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문간채, 왼쪽 3칸은 광으로 사용하고 오른쪽 3칸은 방2칸과 부엌으로 된 살림집 형태이다.


본채 오른편으로는 사랑채 마당과 안채 마당을 구분해주는 담장을 쌓고 있으며 담장 너머로 사당이 있다. 사당 오른편으로는 작은 마당이 있는 별당이 있다. 담장을 여러가지 무늬로 장식해 놓고 있다.


사당 담장과 출입문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 앞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담장 안쪽은 안채와 별당을 연결하는 통로역할을 하고 있다.


별당 건물은 앞면 4칸, 옆면1칸의 작은 건물로 작은 온돌방 3칸과 대청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온돌방과 대청마루 앞으로 툇마루를 달아내어 놓아 앉아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별당 마당에 있는 작은 연못


염행당 앞에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한옥으로서 형태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 한옥집이 있다.


이 집은 'ㄷ'자형으로 된 안채건물로만 되어 있는데, 원래 바깥쪽에 사랑채가 있어서 'ㅁ'자형 가옥을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인 한옥인데, 아마도 원래 있던 사랑채와 문가채가 허물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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