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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문안 교회는 1987년에 감리교의 아펜젤러목사와 함께 미국에서 건너온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 목사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설립한 장로교회이다. 돈의문(서대문) 안쪽에 있었던 언더우드목사의 사저에서 2명의 장로을 선임함에 따라서 최초로 조직화된 장로교회가 탄생했다고 한다.
언더우드 목사는 연세대를 설립하고, 한영사전 편찬, 성서번역, 찬송가 번역 등 우리나라 근대사에 많은 족적을 남기고 있는 인물이다. 현재의 새문안교회 건물은 1960년대 건축한 건물로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높지 않다고 할 수 있지만, 이 교회의 역사적의 의미는 아주 깊다고 할 수 있다.
광화문 사거리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새문안교회 전경. 체육관을 연상케하는 거대한 현대식 교회건물이 난무하는 요즘에도 한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장로교회인 새문안교회는 소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새문안교회 건물은 1960년대 지어진 건축물로서 당시의 우리나라 경제력을 말해주듯이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교회건축물에 비해서 튼튼하게 지었다고 보기는 힘들어 보인다.
언더우드 목사시절 새문안교회의 종을 복원한 것이라 한다.
교육장이나 사무실 용도로 사용하는 건물로 보이는데 70년대 풍의 낡은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새문안교회 입구
1993년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 서울노회 소속이며, 서울 종로구 신문로1가 42번지에 있다. 1887년 9월 27일 선교사 H.G.언더우드가 설립했다. 광화문 서편의 돈의문(敦義門), 즉 새문[新門] 안에 있어서 새문안[新門內]이라 불리게 되었다. 서상륜(徐相崙)과 백홍준(白鴻俊)은 이 교회에서 언더우드에게 장로 안수를 받았다. 1890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사경회(査經會)와 교육사업을 계기로 크게 발전했다. 1920년 12월 차재명(車載明)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제3대 담임 목사로 부임했다. 일제의 탄압과 6.25전쟁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1955년 강신명(姜信明)이 제8대 담임목사를 맡아 재건의 기틀을 다졌다. 1981년 김동익(金東益)이 제9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1998년 까지 시무했다. <출처: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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