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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정독도서관에 있는 조선시대 관청 건물

younghwan 2010. 9. 20.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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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친부는 조선시대 국왕의 친인척인 종친들을 관리하고, 관련 업무를 하던 관청으로 원래는 민속박물관과 건춘문이 있는 경복궁 동쪽편에 있던 것을 1980년대에 경기고등학교가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정독도서관 마당 동쪽편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현재 서울에는 육사 교정에 있는 삼군부 건물과 함께 조선시대 관청 건물 중 남아 있는 3동의 건물 중 하나로, 조선시대 관청의 모습을 실제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종친부 건물은 본채인 경근당과 별채인 옥첩당, 그리고 두 건물을 연결해 주는 복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근당은 앞면 7칸으로 목조건축물 가운데에서는 상당히 규모가 큰 건물이다. 경근당에는 국왕의 어진 등을 보관했던 것으로 보이며, 실제 사무공간은 별채인 옥첩당에서 했던 것으로 보인다. 종친부는 경복궁의 동문격인 건춘문 앞에 있었다고 하는데, 궁궐을 드나드는 외척이나, 상궁 등을 감시하거나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면 7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종친부 본채 건물인 경근당. 내부에는 들어가 볼 수 없지만, 출입문의 형태로 보아서는 여러개(?)의 방으로 구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종친부 경근당에는 높지는 않지만 넓은 월대를 두고 있다. 아마도 종친부에서 국왕들의 영정을 보관하고 있어서 월대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채 오른편에는 사무실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별채인 옥첩당이 있다. 옥첩당도 앞면 5칸의 규모가 큰 건물이다.


종친부 옥첩당과 경근당은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경복궁이나 창덕궁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건물 배치 구조이다.


여러 방향에서 본 종친부 경근당



조선왕조 역대 모든 제왕의 어보(왕의 도장)와 영정(초상화)을 보관하고,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며 종실제군(宗室諸君)의 봉작승습·관혼상제 등 모든 사무를 맡아보던 곳이다. 조선 전기에는 ‘재내제군소’라 하였으나 여러 차례 그 명칭과 기능이 바뀌었다가, 세종 12년(1430)에 종친부라 하였다. 순종 융희 1년(1907)에는 이를 폐지하고, 이곳 사무를 규장각으로 옮겼다. 원래 삼청동에 있던 것을 1981년 현 위치로 옮긴 것이다. <출처:문화재청>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종친이란 국왕의 친가 쪽 친척을 말하는데, 조선시대에는 임금의 정식부인에게서 난 자손은 4대손까지, 후궁에게서 난 자손은 3대손까지 종친으로 대우하였다. 종친부는 종친과 관련된 일들을 의논하고 처리하던 관아였으며, 국왕들의 족보와 초상화를 관리하는 일도 담당하였다. 원래 종친부는 경복궁 동쪽 문인 건춘문의 맞은 편에 있었는데, 이는 건춘문이 왕족과 외가의 친척, 상궁들이 드나드는 문이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여겨지며, 1981년에 정독도서관으로 옮겨졌다. 건물은 본채인 경근당과 그 오른쪽 결채인 옥첩당,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하는 복도로 이루어져 있고 본채 앞에는 월대라는 넓은 단이 있다. 복도는 본채의 뒤쪽과 결채 앞쪽의 트인 공간을 서로 연결해 주는데, 두 건물의 바닥 높이가 서로 다리기 때문에 계단의 기능도 겸하고 있다. 이 건물은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 세 동 가운데 하나로 조선 후기 서울 중앙 관청의 격식을 보여주는 드문 사례이다. <출처:서울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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