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목조건축물인 세병관이 자리한 곳은 오늘날 통영(統營)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되는 삼도수군통제영이 자리했던 장소입니다. 원래의 건물은 다 허물어지고 세병관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습니다. 지금 순차적으로 건물들을 복원하고 있는데 정문역할을 하는 망일루, 수항루가 복원되어 있고, 통제영을 건설했던 통제사 이경준의 사적비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통영 중심부 뒷동산에 자리하고 있어 통영시내가 내려다 보이게 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높은 건물들이 많아서 바다와 통영시내가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통영이란 이름의 근원이 되는 삼도수군 통제영지 입구에 있는 누각인 망일루(望日樓)입니다. 최근에 복원한 건물로 문화재적 가치는 많지 않지만 세병관만 남은 통제영지를 복원하여 역사교육의 장으로 삼는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망일루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는 누각인 수항루(受降樓)입니다. 적의 항복을 받는 곳이란 뜻을 가진 누각으로 가장 먼저 복원된 건물입니다.
통영 통제영지에 유일하게 남은 건물인 국보로 지정된 세병관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입니다.
통영 삼도수군통제영의 건물 중 유하게 남은 건물로 국보로 지정된 세병관입니다. 건물의 규모와 현판의 글씨가 조선수군의 기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통제영 중심 건물인 객사로 들어가는 계단과 담장입니다.
이 비석의 이름은 '두룡포 기사비'로 선조때 이 곳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한 이경준의 치적을 기록한 '이경준 사적비'입니다. 원래 두룡포는 작은 포구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경준이 이곳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옮겨옴으로써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습니다.
안내표지판
통제영이란 충청·전라·경상도의 삼도수군을 통할하는 통제사가 있는 본진을 말하는 것으로, 삼도수군통제영을 줄여서 표현한 것이다.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한산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다. 지금의 통영시 관내에 통제영을 짓기 시작한 것은 선조 36년(1603) 때의 일이다. 제6대 이경준 통제사가 이곳에 터를 닦고 2년 뒤인 선조 38년(1605)에 세병관 (보물 제293호), 백화당, 정해정 등을 세웠다. 이곳은 고종 32년(1895) 각 도의 병영과 수영이 없어질 때까지 292년간 그대로 유지하다가 일제시대 민족정기 말살정책에 의해 세병관을 제외한 많은 건물이 사라졌다. 당시 건물 중 남아있는 것은 세병관 뿐이며, 1987년 복원된 수항루 1동과 안내판 4기, 그밖에 통제영지 대부분의 지역은 관공서, 주택이 들어 서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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