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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건축(불전_요사)

계룡사 갑사, 대적전과 삼성각

younghwan 2010. 4. 2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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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룡사 갑사에는 중심불전인 대웅전을 제외하고는 보조 불전의 성격을 갖는 명부전이나, 나한전 등을 두지 않고 있으며, 원래 사찰의 중심불전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대적전을 두고 있다. 대적전은 대적광전이라고도 하며 원래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모니불, 아미타불을 모시는 불전이지만 이 곳 갑사의 대적전은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보현보살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화엄십찰의 하나인 관계로 아직도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대적전을 두고 있지만 후대에 와서 그 의미가 퇴색된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 뒷편에는 칠성.산신.독성을 모신 삼성각을 두고 있다.


앞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대적전. 원래 이 곳이 갑사의 중심불전이 있었던 곳으로 보이며, 이 불전 앞에는 갑사부도가 세워져 있다. 비록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지는 않지만, 화엄십찰의 명맥이 이 불전이 이름에 남아 있다.


이 불전은 문살이나 단청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지는 않다. 갑사의 중심불전인 대웅전과는 약간 독립적인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보는 불전이다.




여러 방향에서 본 계룡산 갑사 대적전


대적전 옆에는 수행공간인 작은 요사채가 있다.


대적전 앞 마당에 있는 갑사 부도. 사찰 경내에 부도가 있는 것은 흔한 경우가 아니며, 원래 이 곳에 있던 것은 아니고 사찰뒤에 쓰러져 있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갑사는 계룡산 아래에 있는 절로 백제 구이신왕 1년(420)에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설과 556년에 혜명이 지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679년에 의상이 보수하여 화엄종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신라 화엄10찰의 하나가 되었다. 859년·889년에 새로 지었으나 정유재란(1597)으로 인해 건물이 불타 버린 것을 선조 37년(1604)에 다시 지었다. 갑사 대적전은 대적광전이라고도 하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삼신불(석가모니·아미타불·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법당이다. 원래의 금당지 옆에 있던 건물로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가장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가운데 칸은 공포가 2개이며, 양 끝칸은 1개의 공포로 이루어졌다. 내부에는 불단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보현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석가모니불 위에 천장을 한단 올림으로써 닫집의 효과를 나타내었다.


대웅전 뒷편에 있는 삼성각. 일반적인 사찰에 비해서 건물이 크고 오래된 편이다.

갑사는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에 아도화상이 처음 지었고, 통일신라 문무왕 19년(679)에 의상이 고쳐 지었다고 한다. 그 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고치고 넓혀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삼성각은 칠성·산신·독성의 삼성을 모신 곳이다. 건물 이름이 삼성각 인 이유는 모두 불교 밖에서 수용한 신이기 때문에 전이라 하지 않고 각이라 한다. 칠성은 도교의 북두칠성이 불교화한 것으로 수명장생을 주관하는 별이다. 산신은 우리 민족 고유의 토속신으로 호랑이와 더불어 나타난 만사형통의 신이며, 독성은 혼자 깨달은 성자를 말한다. 각각의 건물을 따로 지어 삼성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은 삼성각 안에 같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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