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고려 조선 유적_왕릉

남양주 다산 정약용선생 유적지

younghwan 2010. 9. 11. 17:21
반응형

 남양주 조안면 팔당댐 인근에 있는 다산 정약용 선생 유적지이다. 이 곳 다산 선생 유적지는 한강을 내려다 보고 있는 묘역을 중심으로, 다산이 벼슬을 버릭고 낙향해서 살던 집인 여유당과 다산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 그리고 기념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곳 다산 유적지는 서울에서 아주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어며, 조선후기 정조때 실학사상에 큰 업적을 남긴 선생의 일생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다.


다산 유적지 뒷동산에 마련된 선생의 묘소. 지금은 팔당댐으로 막힌 호수같은 풍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 묘소 오르는 길


언덜길에서 보이는 다산 선생의 저택인 여유당


다산 정약용 선생과 부인 풍산 홍씨의 합장묘.  선생의 묘는 소박하면서 단정해 보인다. 묘소 아래로 한강을 내려다 볼 수 있게 위치를 잡고 있다.


묘소를 지키는 망부석. 멀리 한강이 내려다 보인다.


선생의 묘소가 있는 곳에서 내려다 본 한강과 주위의 모습. 아래 사진은 다산 선생의 오랜기간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초당에 있는 천일각에서 내려다 본 강진만의 풍경이다.


이 곳 강진만의 풍경을 보면 한강변에 있었던 다산 선생의 집과 비슷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 아마도 선생은 유배생활 기간동안 이 곳에서 고향생각을 많이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실학의 대가였던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 선생의 묘소이다. 16세에 이익(李瀷)의 학문을 접하면서 민생을 위한 학문에 뜻을 두었으며, 이후 새로운 학문인 서학에 흥미를 가졌다. 정조 13년(1789)에 문과에 급제한 후 홍문관 수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형조참의를 지내면서 규장각의 편찬 사업에 참여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다. 또한 정조 16년(1792)에 거중기를 제작하여 수원성을 축조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순조 1년(1801) 신유박해 때 경상북도 포항 장기로 유배된 뒤에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강진으로 옮겨진 후 순조 18년(1818)까지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선생은 귀양살이 중에도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고, 고향인 양주에 돌아와서도 여생을 오직 저술에 몰두하여『목민심서』·『경세유표』등 5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현재 묘역에는 선생과 부인 풍산 홍씨가 합장되어 있는데, 표 앞에는 묘비·상석·향로석이 마련되어 있으며, 좌우에는 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알려주는 망주석 1쌍이 있다. 후에 묘 뒤로 담을 둘렀으며, 묘비도 1기 추가하였다. <출처:문화재청>


다산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


다산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살았던 집인 여유당


작은 공원 같은 다산 정약용 선생 유적지


기념관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위치한 다산 유적지는 나라의 부패를 꾸짖던 선생의 쩌렁쩌 렁한 목소리와 꼿꼿하고 검소한 그의 생활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생가 여유당, 이백 년 세월의 흐름 앞에 절로 고개 숙여지는 다산의 묘,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의 업적과 자취가 전시된 다산기념관과 다산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조명해 보는 다산문화관이 있 다. 한 걸음이면 뛰어 넘을 것 같은 여유당의 낮은 담장에는 허물없이 백성들의 기쁨 과 아픔을 함께하고자 했던 다산 선생의 마음이 담겨 있다. 매년 10월 다산유적지에서 펼쳐지는 다산문화제는 다채로운 시민행사와 공연 등 모두 함께 어우러지는축제의 한 마당으로 다산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문화적 시각으로 재조명, 우리 문화를 통해 다산 선생을 직접 체험하는 시민문화축제이다. <출처:남양주시청>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