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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임진왜란 3대 대첩중 하나인 행주대첩이 있었던 행주산성 아래에 있는 조그만 서원이다. 일반적으로 서원은 강학과 제사기능을 같이 가지고 있으면서 서원에 모신 인물의 학풍을 따르는 사람을 중심으로 학문과 사상을 논하는 것이 보통이나, 이 곳 행주서원은 구한말인 1842년에 권율장군을을 모시는 서원 없어서 국왕인 헌종의 명으로 세워진 서원으로 제사기능을 주로 하고 있는 서원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제사기능을 1970년에 행주산성내 사당인 충장사로 옮겨져서 그 기능을 잃어버린 서원이다. 그래서 이름도 행주서원 옛터라는 의미로 행주서원지라고 부른다. 행주산성 아래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행주나루터 인근에 세워진 이 행주서원 주변은 서울에서 가까운 대표적인 먹거리촌을 형성하고 있다.
행주서원지, 고양시 덕양구 행주동
현종 8년(1842)에 세워진 행주서원은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왜적들과 싸워 큰 공을 세운 권율장군을 모신 곳이다. 행주서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기공사라 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고, 점차 복원하여 현재에 이른다. 현판은 고종 때 무신으로 글씨와 문장이 뛰어난 신헌이 썼다. 권율장군은 선조15년(1582) 문과에 급제하고 임진왜란 때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다. 선조 32년 전라도 병력을 인솔하여 행주산성에 주둔하던 중 3만병이 왜군과 싸워 2만4천명을 사살하는 행주대첩의 전과를 올린 공로로 도원수가 되었다. 왜군이 철수한 선조37년 노환으로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가 세상을 떠났다. 죽은 후 선무공신 1등에 영의정의 벼슬을 받았고, 시호를 충장공이라 하였다. <출처: 고양시청>
행주서원은 행주산성 아래 한강과 행주나루터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출입구인 솟을대문, 강당, 사당과 숙소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금은 서원 앞으로 민가들이 들어서 있어서 한강이 보이지는 않는다. 서원안에는 행주대첩비가 있었는데 1970년 충장사을 세우면서 옮겼다고 한다.
행주서원 앞 골목길
행주서원 출입문. 일반 양반저택처럼 솟을대문에 행랑채를 두고 있는 형태이다. 현판 글씨는 구한말 무신이자 명필로 강화도조약을 담당했던 신헌이 쓴 글씨라고 한다.
행주서원 강당. 앞면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넓은 마루를 두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한강경치를 감상하거나 공부하기에 좋은 구조로 되어 있다. 규모가 큰 서원의 경우는 경치를 감상하는 누마루와 강당을 따로 두고 있는데 행주서원 강당은 2가지 기능을 겸하고 있으며, 강학기능이 크게 중시되지 않았던 것 같다.
행주서원 유생들의 숙소. 보통 동.서재를 두고 있으나 행주서원은 서재만을 두고 있다. 구한말에 세워져서 공부하던 유생이 많지 않거나, 행랑채가 있어서 서재만을 둔 것으로 보인다.
행주서원에는 기공사라는 사당이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불타버린 것을 건물만 복원해 놓고 있으며, 사당으로서의 기능은 행주산성 내 충장사로 옮겼다.
행주서원에는 원래 행주대첩비가 있었으나 1970년대 충장사가 건립되면서 옮겼다고 한다.
2010년 행주서원
2014년 행주서원
행주서원 앞 골목길
관광지로 변한 행주산성 앞 마을 한강변
행주산성 아래 한강변
행주산성에는 권율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충장사가 있다. 원래 한강변 행주나루 부근 마을에 있던 행주서원 사당이었던 기공사의 기능을 옮겨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충장사는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전통적인 형태의 사당은 아니고 70년대 성역화 사업때 만든 콘크리트리로 지은 사당이다. 그래서 전통전인 사당의 모습은 아니고 전형적인 70년대 풍의 건물 모습을 하고 있다. 현판은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쓴 글씨라고 한다.
충장사,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권율의 전공을 기리고 그의 호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1970년대 문화재 재건사업으로 건립한 사당이다.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콘크리트 건물이다. 충장사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이며 사당 안에 봉안된 장군의 영정은 장우성 화백이 그린 것이다. 충장사에서는 매년 3월 14일 행주대첩을 기념하는 제례를 모신다. <출처:고양시청>
행주산성 충장사 입구 홍살문
삼도삼문,
궁궐, 사당, 서원, 향교에서 볼 수 있는 삼도는 가운데 신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참도를 두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일반적으로 신도는 사당에 모셔진 신이 다니시는 곳으로 일반인은 오갈 수 없으며, 부득이 넘어가게 될 경우 머리를 숙여 예를 갖추고 넘어가면 됩니다. 삼도와 삼문이 있을 때 들어가는 방법은 우입좌출로서 오른쪽으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나옵니다. 충장사에도 세 개의 문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고양시청>
충장사 들어오는 길
충장사 전경. 행주산성 중턱 언덕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서원과는 달리 사당 건물만 들어서 있다.
충장사 삼문. 전통적인 서원의 사당은 통영 충렬사 처럼 외삼문, 내삼문이 있는데 이 곳은 그런 구분이 없이 삼문만 있다.
충장사. 1970년대 지어진 사당으로 한옥형태를 하고 있지만 콘크리이트로 지어진 건물이다. 현판은 박정희 전대통령이 쓴 글씨라고 한다.
충장사는 위패가 아닌 영정을 모시고 있는 영당이라고 할 수 있다.
행주산성 충장사
충장사 앞 관리인 숙소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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