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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량리 명성황후 홍릉이 있었던 자리에 조성된 영휘원 뒷편으로는 세종대왕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지금 기준으로는 그리 크지 않은 건물로 약간을 낡은 분위기를 주고 있는 곳이지만, 아마도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낮았던 60년대에 세워져서 그런것으로 보인다.
세종대왕 기념관 건물 앞에는 보물 838호 지정된 청계천 수위를 측정하던 장치인 수표가 서 있다. 수표는 조선 세종때 강우량을 측정하더 측우기와 함께 기상현상을 측정하던 시설이다. 세종때 만든 수표는 나무로 만들었으며, 촌.푼까지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것이었다고 한다. 현재의 수표는 청계천 수표교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성종때 만든 수표를 개량하여 영조때 만들어 설치한 것이라 한다.
청계천 수표교에 설치되어 있던 수표. 60년대 청계천 복개공사를 하면서 수표교는 장충단공원으로, 수표는 이 곳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수표는 비석처럼 생긴 것으로 10척(약 2m) 까지 하천의 수위를 측정할 수 있다. 청계천의 평상 수위는 6척이며, 9척이 넘으면 위험수위로 홍수를 예고했다고 한다.
청계천 수표에 새겨진 글씨. 수표는 척단위까지만 측정했다고 한다.
청계천 수표
수표와 같이 전시된 측우기(복제품)
청계천 수표가 있었던 수표교는 현재 장충단 공원으로 옮겨져 있다.
이집트 나일강의 수위를 측정하던 아스완의 나일미터
조선 세종 때 강우량을 측정하기 위해 측우기를 만들고, 이 방법으로 하천의 수위를 측정기 위해 설치한 것이 수표이다. 한강변과 청계천 2곳에 설치하였는데 한강변의 것은 바윗돌에 직접 눈금을 새긴 것이고, 청계천의 것은 낮은 돌기둥 위에 나무기둥을 세운 형태였다. 그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청계천의 수표는 성종(재위 1469∼1494) 때 돌기둥으로 개량한 것으로 높이 3m, 폭 20㎝의 화강암 사각기둥으로 만들었다. 위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삿갓 모양의 머릿돌이 올려져 있고, 밑에는 직육면체의 초석이 땅 속 깊이 박혀있다. 돌기둥 양면에는 1척(21㎝)마다 1척에서 10척까지 눈금을 새기고 3·6·9척에는 O표시를 하여 각각 갈수(渴水)·평수(平水)·대수(大水)라고 표시하였다. 6척 안팎의 물이 흐를 때가 보통수위이고, 9척이 넘으면 위험 수위로 보아 하천의 범람을 미리 예고하였다. 세종 때 나무 수표와 비교하면 촌·푼까지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는 점이 아쉽지만, 가뭄과 홍수를 미리 예견할 수 있어 실생활에 직접 이용된 한층 더 발전된 것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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