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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고궁박물관] 조선왕실의 출생, 왕실을 태를 묻은 태실을 중심으로

younghwan 2010. 11. 1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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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궁박물관에는 조선왕실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국왕을 중심으로 왕실 인물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살아가던 모습을 설명하기 위한 전시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그 중 첫번째로 국왕을 비롯한 왕실인물의 탄생과 관련된 절차와 내용에 대한 설명이다. 왕실 인물의 출생과 관련해서는 유물이나 문서류가 많이 남아 있지는 않는 것 같고, 주로 왕실인사의 태를 묻은 태항아리와 태지석 위주로 전시되어 있다. 주로 일제강점기에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태실들을 경기도 고양의 서삼릉으로 옮기면 출토된 것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탄생당 현판 탁본. 탄생당 팔십서라 적힌 이 현판은 영조가 80세에 창덕궁 보정당에 걸었던 것이다. 이곳은 1694년 숙빈 최씨가 영조를 낳은 산실이다.


산실구봉안 탁본(1773년). 산실에 쓰였던 물자를 봉안한 곳에 걸렸던 현판으로  영조가 80세에 쓴 것이다.


태조임금 태외항아리(고려, 14세기). 조선왕조의 창업자 태조 이성계의 바깥 태항아리이다. 태항아리는 왕손의 태를 갈무리한 항아리로, 내외 두 개의 항아리로 되어 있다. 충남 금산군 추부면에 있었던 태조의 태실은 1929년 서삼릉으로 이전되었다.


세종임금 태지석 (1601년)과 태내항아리. 태지석에는 태의 주인과 태어난 때, 태를 묻은 때를 기록하였다. 이 지석은 선조임금 떄 경남 사천 곤명의 세종임금 태실을 고칠 때 새로 만든 것이다. 세종임금의 태를 갈무리한 내항아리는 현재 확인된 최초의 백자 태항아리로 뚜껑과 몸체를 묶기위한 9개의 고리가 달려 있다. 경남 사천군 곤명면에 있었던 것을 서삼릉으로 옮겼다.


인종임금 태항아리(1521년) 풍만하고 긴 몸체에 담청을 띤 백자유가 발라져 있으며 어깨에 4개의 고리가 달려있다. 조선존기 태항아리의 발달된 모습을 보여준다. 원래 경북 영천군 청통면에 있던 인종의 태실은 1929년 경기도 서삼릉으로 이전되었다.


정조임금 태항아리와 동전 (1753년). 넓은 입구에 키가 작으며 어깨가 벌어지다가 좁아지는 조선후기 태항아리로, 내항아리 바닥에는 동전 자국이 있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있었던 정조의 태실은 1929년 서삼릉으로 이전되었다.


성종임금 태내항아리 (1458년). 길다란 몸체에 어깨 위에 4개의 고리를 가지고 있으며, 조선전기 태항아리의 전형이 확립되기 직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경기도 광주시 경안동에 있던 성종의 태실은 1929년 경기도의 서삼릉으로 이전되었다.


연산군 생모 윤씨 태내항아리(1455년). 성종왕비 윤씨의 태항아리로 조선전기 양반가의 태항아리 모습을 알 수 있다. 왕비가 된 후 경북 예천군 용문면에 새롭게 만든 태실로 옮겨졌다가 1929년 경기도의 서삼릉으로 이전되었다.


연산군 원자 금돌이 태항아리와 태지석 (1501년). 연산군의 원자인 금돌이의 태를 안장하던 항아리와 지석이다. 경북 상주군 화서면에 있었던 태실이 1929년 서삼릉으로 이전되었다.


효종3년 숙명공주 태항아리와 태지석(1600년). 숙명공주는 효종의 셋째 딸로 경북 김천군에 있던 태실을 1929년 경기도 서삼릉으로 이전되었다.


순조임금 태항아리(1790년). 키가 작고 풍만한 몸체에 큰 뚜겅을 지니고 있으며 끈을 묶기 위한 고리는 어깨 아래로 내려와 있다. 조선후기 태항아리의 말기 형태를 보여준다.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에 있던 것을 옮겼다.


명종임금 태실 모형


전북 전주 경기전 옆에 있는 예종임금 태실과 태실비

조선왕실의 출생과 교육
왕조의 지속과 발전을 위해서는 왕실이 번창하여야 하고 지혜롭고 강건한 군주가 대를 이어야 한다. 왕실의 출산과 교육은 왕조의 생명을 유지하는 근간으로서, 조선 왕실에서는 자손을 얻고 교육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왕실 자손을 잉태한 때부터 산모는 태교를 하여 안전한 출산으로 건강한 아기가 탄생하도록 힘썼다. 출산에 임해서는 산모와 태아의 안전을 위해 산실청을 설치하고 필요한 인력을 준비하였으며 안산을 기원하는 의식을 갖추었다. 조선왕실의 출산관습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태를 갈무리하고하는 안태의례였다. 왕실에서 태를 갈무리하는 것은 태어난 아기의 장수와 복을 비는 것인데 이는 곧 왕조의 운명과 직결되는 것이므로 중요한 국가의 행사로 삼았다. <출처: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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