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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김제 관아 내아, 동헌과 함께 남아 있는 고을 수령 살림집

younghwan 2010. 11. 2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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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 관아는 조선시대 관아를 구성하는 동헌, 내아, 정자가 남아 있고 부근에 관아에서 관리하던 중등교육기관인 향교가 있는 조선시대 지방의 행정 중심지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으로 역사적, 사회적 가치가 높아서 사적 482호로 지정된 곳이다. 김제는 정4품이 군수가 고을 수령으로 있던 지역으로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넓은 평야지대로 풍부한 물산을 자랑하는 곳이다.

 김제 내아는 고을 수령의 살림집으로 김제군 동헌 뒷편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는 'ㄷ'자형 안채 건물만 남아 있는데, 현존하는 관아 건물 중 동헌과 내아가 같이 남아 있는 흔치 않은 경우이다. 현재의 규모로 봤을 때는 고을 수령의 살림집이 작다는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안채 외에도 여러동의 살림집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옛관청 건물들은 대한제국 시절에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그 지역을 대표하는 초등학교로 변신했기때문에 남아 있는 건물들은 많지 않다. 대부분 초등학교 부속 건물처럼 사용하다가 최근에 복원되고 있는 추세이다. 김제 관아는 땅이 넓은 지역적 특성때문에 건물을 헐지 않고 다른 곳에 초등학교가 신축된 것으로 보인다.


김제 동헌 뒷편에 있는 고을 수령의 살림집인 내아. 'ㄷ'자형 구조를 하고 있는데 원래는 부속건물과 함께 'ㅁ'자형을 이루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제 내아는 전체적으로 앞면 5칸, 옆면 5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옆면에서 보면 가운데 3칸은 커다란 대청마루로 되어 있다.


앞면 2칸, 옆면3칸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대청마루는 일반적으로 민간 주택에서는 볼 수 없는 구조이다. 이는 아마도 김제 관아를 방문한 고위 인사들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사용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김제군은 넓은 평야를 관장하는 고을로 물산이 풍부하기때문에 중앙관료나 유력자들에게 많은 물품을 공급했을 것으로 생각되며, 관련하여 방문하는 고위인사도 많지 않았을까 한다.


내아 건물 뒷편의 툇마루와 굴뚝


김제내아 입구. 가운데 출입문이 있고 그 양쪽으로 두칸씩 방을 두고 있다. 그 형태에 있어서 손님을 맞는 사랑채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판문으로 만들어진 내아 출입문. 내아는 관아 내에 위치한 살림집이기 때문에 대문을 장식할 필요성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단순한 출입문을 두고 있다.


내아 안채 내부는 가운데 3칸에 큰 대청마루가 있고, 양쪽으로 방들이 있다. 일반 주택에 비해서 방의 숫자가 많아 보인다.


내부의 방문과 부엌문


내아 안쪽의 툇마루


내아 바깥쪽 툇마루와 망문. 바깥으로도 출입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김제군 수령의 살림집인 내아.


김제내아
이곳은 조선시대 김제 고을의 수령이 기거하던 살림집이다. 관아는 외동헌과 내동헌으로 나뉘는데, 외동헌은 사무처로 흔히 이를 동헌이라 불렀으며 내동헌은 수령의 처소이다. 김제 내아아는 내동으로 조선 현종 8년 (1667)에 세운 문화재로 현재는 동쪽이 트인 'ㄷ'자형 안채 건물 하나만 남아 있지만 원래는 여러부속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춧돌이나 기둥. 처마에 쓰인 목재가 모두 질이 좋고 정성껏 다듬은 것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동헌과 함께 남아 있는 내아로서 중요한 학술자료로 평가된다. <출처:김제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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